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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에 보이는 倭系百濟官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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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계백제관료는 5세기 후반단계부터 백제가 가야와 왜국의 유력씨족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을계기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들 가운데는 왜국의 유력씨족 출신이 많지만 백제계 도왜인의 경우도 있었다. 이들이 대화정권의 씨성을 그대로 사용했던 것은 대왜외교를 유리하게 이끌려는 백제측의 의도가 작용했기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백제와 왜국 모두에게 신속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백제의 왕도에 체재하면서 백제를위해 활동한 사람들로 보아야 한다. 백제는 왜계백제관료를 왜국뿐만 아니라 안라에도 파견하였다. 왜계백제관료의 외교 대상이었던 소위일본부 관련 인물들은 대화정권에서 파견한 사신이 아니라 6세기 이전부터 독자적으로 가야지역과 관계를맺으면서 일본열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대외활동은 『일본서기』 단계에서 천황의 명에의해 활동한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백제는 이들과 계보 또는 출신지역과 관계가 있던 왜계백제관료를파견함으로써 반백제적 성향을 바꾸어 신라를 견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안라에서 실질적으로 반백제정책을 주도하던 가야소국 수장층에 의해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하였다. 한편 왜계백제관료의 활발한 대왜외교 활동은 성과를 거둔 듯 흠명기에는 백제와 왜국의 활발한 교섭이기록되고 있다. 당시 백제로서는 급변하는 왜국 내부의 정세를 파악하고 언어 등의 통교상의 가장 중요한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왜계백제관료의 협조는 절실하였을 것이다. 나아가 6세기 중엽 전후에 일어난한반도의 세력 다툼 속에서 백제의 대왜외교는 더욱 긴박해졌고, 이 시기에 군사외교의 일익을 담당한 것이왜계백제관료였다. 왜계백제관료의 활동기사가 『일본서기』 흠명기 이후로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은 『백제본기』 기록의잔존형태와 관계가 있다. 日羅의 도왜를 마지막 왜계백제관료의 소멸 이유로 거론하기도 하지만, 일라는대가야 왕족 출신인 ‘가야계백제관료’라고 판단된다. 일라는 대가야의 멸망 후에 백제로 건너가 그의 집안내력과 함께 백제의 국정운영에 많은 기여를 하면서 달솔의 위치까지 올라 갈 수 있었다. 또한 승려로서의활약도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일라를 왜국으로 부른 것은 대반씨이며, 그 의도는 흠명대 이후 추락한자신들의 부활을 위한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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