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중기 진주 동면의 右族 거주 里坊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Libang of Jinju Dongmyeon's Ujok Residence in the Early and middle Chos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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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경상도지리지』 진주 임내 반성현의 四方界域에 의하면 그 구역 내에 해당하는 리방은 반성리・가수개리・정수개리・비라동리・부다리・상사리・용봉리・청원리・승어산리 등 모두 9개소였다. 그 리방의 자연촌은 연계재본 『진양지』에 의하면 35개소이지만 그 실태를 고증한 결과 모두 39개소였다. 우족이 정착한 리방의 자연촌과 시기를 검토한 결과 상사리 우곡촌에는 진양정씨 우곡공파 隅谷 鄭溫(1324-1402), 상사리 백야동에는 고려 말기 진양정씨 은열공파 都染署令 鄭淳이 정착했다. 또한 백야동에는 울산김씨 白巖 金大鳴(1536-1603)의 고조부 奉化縣監 金國老가 정순의 딸과 혼인을 통해 이주했다. 그리고 정수개리 莫耶洞에는 16세기 초에 청주한씨 遯菴 韓承利(1477-1536)가 입향하여 정착했으며, 한승리의 사위 재령이씨 사의공파 大山 李琠(1502-1579)과 그의 仲兄 李琛이 입향하여 거주하기도 했다. 상사리 백야동의 정순의 내외손 가문들과 정수개리 막야동의 청주한씨 가문은 우족으로서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바탕으로 함안과 진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상우도의 유력 가문들과 혼인을 통해 사회적 기반을 확고히 하고 재지적 기반을 확장하였다. 그들 우족들은 남명학파의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삼고, 대과와 사마시 합격자를 다수 배출함으로써 정치・사회적 활동과 영향력도 적지 않았다. 특히 상사리 백야동의 우족들은 향촌지배권을 두고 진주목사 이제신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우족 가문들이 반성현의 縣內 외곽 상사리와 정수개리에 정착하여 번성함으로써 자연촌과 리방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상사리의 속방, 즉 자연촌 백야동은 白也里로 지칭될 만큼 리방의 규모로 성장했다. 정수개리의 중심 마을은 조선 초기까지 龍巖寺의 寺下村인 용암촌이었으나 16세기 초에 이르러 우족 가문이 정착한 막야동이 그 중심 마을로 성장했다. 정수개리와 상사리는 반성현의 지역촌 가운데 縣內 다음으로 이른 시기에 촌락이 형성되고 우족 중심의 리방으로 성장하였다.
Abstract
First, According to the four-way boundary of Bansonghyon, the Jinju Imnae of 『Gyeongsangdojiliji』, there were 9 Libangs within that area, including Bansongri, Sangsangri, and Jeongsugaeli. The natural villages in nine Libang were 35 places according to the Yeongyejaebon 『Jinyangji』, but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actual situation, it was revealed that there were 39 places in all. Second,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natural villages and time period of Libang where Ujok settled, Jinyang Jeong Clan Ugoggongpa Jeong On settled in Sangsari Ugogchon and Jinyang Jeong Clan Eunyeolgongpa Jeong Soon settled in Sangsari Baekyadong in the late Goryeo, respectively. Also, Ulsan Kim Clan Kim Guk-ro moved to Baekyadong through marriage with Jeong Soon's daughter. Jeongsugaryri Makyadong was settled by Cheongju Han Clan Han Seung-ri at the beginning of the 16th century, and Han Seung-ri's son-in-law Jaelyeong Lee Clan Sauigongpa Lee Jeon and former second older brother Lee Chim moved there. Third, the Nae'oeson(內外孫) family of Jeong Soon of Sangsari Baekyadong and the Cheongju Han Clan family of Jeongsugaryri Makyadong established a social foundation through marriage with the influential families of Haman and Jinju, based on their superior social status as Ujok. Through this, they expanded their base within the region. These Ujoks, based on Nammyeonghagpa's human network, produced a large number of Gwageo Exam passers, so they had considerable political and social activities and influence. In particular, the Ujoks of Baekyadong had conflicts with Jinju Governors Lee Je-sin over the dominance of rural communities in the process. Fourth, Ujoks settled and prospered in Sangsari and Jeongsugaryri outside Hyunnae of Bansonghyon, leading to the growth of natural villages and Libang. Sangsari's Baekyadong was also referred to as Baekyari. This has a lot to do with Baekyadong's growth. Until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central village of Jeongsugaryri was Yongamchon, the Yongamsa Saha village. However, by the beginning of the 16th century, Makyadong, where the Ujok family settled, has grown as its central village. Sangsari and Jeongsugaryri are considered to be Libang, where Ujok-centered villages were formed and developed in the earliest period after Hyunnae among the district villages of Bansongh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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