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고학의 ‘原史’ 개념 도입과 원삼국시대론
Introduction of the Concept about ‘Proto-history’ in Korean Archeology and the Argument of Proto-three Kingdoms Period
1
조회
0
다운로드
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한국 고고학에 처음으로 原史 개념을 도입한 것은 김원룡이다. 김원룡은 선사와 역사시대의 과도기, 원사 단계의 삼국시대라는 의미로 원삼국시대(원사)를 설정하였다. 일본에서는 19세기 말에 인류학 분야에서 이미 원사 개념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유럽의 고고학적 層序學에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 우리나라 원사 개념의 등장에 도화선이 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김해 회현리 패총이다. 김해 회현리 패총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김해시대, 김해식토기 등의 개념이 탄생하였다. 김원룡은 1972년 기존의 김해시대를 대체한 원삼국시대 개념을 처음 제안하였다. 그러나 원삼국시대 명칭 도입은 수많은 시대구분논쟁의 불씨가 되었다. 원삼국시대 명칭 비판론으로는 철기시대론, 삼한시대론, 고조선시대론 등이 있다. 그리고 원삼국시대의 상한에 대해서도 기원전후, 낙랑군 설치, 삼각형점토대토기 등장 등 다양한 기준점이 제시되었다. 또한 원삼국시대 타날문토기의 계보, 연대 문제가 불거진 뒤부터 와질토기 논쟁이현재까지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논쟁은 중도식무문토기 등 원삼국시대 물질자료 전반에 대한 문제로 확대되었다. 지금까지도 원삼국시대(원사)의 시기구분, 물질자료의 성격을 둘러싼 다양한 통설의 설정 및 폐기가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원사 개념의 모든 조건을 만족시킬 정도의 정의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선학의 논쟁 과정이 현재 한국 고고학의 근간이 되었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학문적 한계마저도 학술적인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Abstract
Kim, Yonyong is the one who introduced the concept of Proto-history in Korean archeology for the first time. Kim, Yonyong(金元龍) set up the Proto-three Kingdoms Period(Proto-history) in the meaning as the transitional period between prehistoric period and historical period, and the Three Kingdoms Period of Proto-history stage. In the end of the 19th century, Japan already used the concept of Proto-history in the anthropology area, which was influenced by archeological stratigraphy of Europe. The appearance of the concept of Proto-history in Korea was triggered by Hoehyeon-ri shell mound in Gimhae which was researched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Based on the relics excavated in Hoehyeon-ri shell mound in Gimhae(金海 會峴里 貝塚), the concepts like Gimhae period and Gimhae-type pottery were set up. In 1972, Kim, Yonyong initially suggested the concept of Proto-three Kingdoms Period substituting for the existing Gimhae period. However, the introduction of the name as Proto-three Kingdoms Period caused numerous controversies of periodization. Representatively, as an objection to the name as Proto-three Kingdoms Period, the argument of iron age(鐵器時代論), the argument of three Hans period(三韓時代論), and the argument of Gojoseon period(古朝鮮時代論) appeared. And regarding the upper limit of Proto-three Kingdoms Period, various reference points were presented such as around AD, installation of Nangnang(樂浪) commandery, and appearance of Triangulated clay-stripe pottery. Also since the issue of genealogy and period of Tanalmun pottery(打捺文土器) in proto-three Kingdoms Period was brought up, the controversy of gray pottery has been accelerated even till today. This controversy was expanded to the issue of overall material data of Proto-three Kingdoms Period such as Jungdo-type plain pottery. Like this, since the introduction of the concept of Proto-three Kingdoms Period(Proto-history), various commonly-accepted theories surrounding periodization and nature of material data have been repetitively set up and discarded. However, despite each argument, it does not reach the satisfactory definition that could meet all the conditions of the concept of Proto-history. However, there is no doubt that the controversy process led by the scholars in the past has become the basis of current Korean archeology, so even the scholarly limitation is good enough to get academic evaluation.
참고문헌 (116)
- 권오영, "원삼국시대와 삼국시대, 교류와 교통의 고고학", 제43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 발표자료집 (2019), 한국고고학회
- 김무중, "중부지방 백제토기의 형성과정 연구 : 미사리유적을 중심으로", 석사, pp.1994
- 金暘玉, "韓半島鐵器時代土器의 硏究", 白山學報, 20 (1976), 白山學會
- 金暘玉, "崔永禧先生華甲紀念 韓國史學論叢" (1987), 探求堂
- 金瑛河, "新羅의 發展段階와 戰爭", 韓國古代史硏究, 4 (1990), 韓國古代史學會
- 金元龍, "金海貝塚年代에 關한 再檢討", 歷史學報, 9 (1957), 歷史學會
- 金元龍, "韓國文化의 考古學的 硏究", 韓國文化史大系, 1 (1964), 高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 金元龍, "風納里 土城內 住居層", 考古美術, 52 (1964), 韓國美術史學會
- 金元龍, "삼국시대의 개시에 관한 일고찰-삼국사기와 낙랑에 대한 재검토", 동아문화, 7 (1967), 서울대 동아문화연구소
- 金元龍, "回顧와 展望(Ⅱ.先史時代)", 歷史學報, 39 (1968), 歷史學會
- 金元龍, "加平馬場里冶鐵住居址", 歷史學報, (50ㆍ51) (1971), 歷史學會
- 金元龍, "石村洞 發見 原三國時代의 家屋殘構", 考古美術, (113ㆍ114) (1972), 韓國美術史學會
- 金元龍, "三國初期의 考古學的 硏究(Ⅰ)", 論文集, 19 (1974), 서울대학교
- 金元龍, "世界陶磁全集-韓國古代- 17" (1979), 小學館
- 金元龍, "韓國史市民講座 1" (1987), 一潮閣
- 金元龍, "韓國考古學의 成果와 課題", 韓國考古學報, 21 (1988), 韓國考古學會
- 金元龍, "原三國時代에 대하여", 考古學誌, 11 (2000), 韓國考古美術硏究所
- 金貞培, "韓國古代國家 起源論", 白山學報, 14 (1973), 白山學會
- 金貞培, "韓國 考古學에서의 時代區分 問題", 韓國學報, 14 (1979), 一志社
- 김정배, "'原三國時代' 용어의 문제점", 韓國史學報, (1), pp.7~19 (1996), 고려사학회
- 金廷鶴, "熊川貝塚硏究", 亞細亞硏究, 10(4) (1967), 高麗大學校亞細亞問題硏究所
- 盧爀眞, "韓國 先史文化 形性過程의 時代區分", 韓國上古史學報, 15 (1994), 韓國上古史學會
- 노혁진, "한국고고학의 시대구분과 원삼국시대론에 대한 소론", 호남고고학보, 51, pp.122~133 (2015), 호남고고학회
- 노혁진, "중부지역과 북한의 고고학적 쟁점과 과제, 선사ㆍ고대의 중부지역과 북한- 교류ㆍ네트워크ㆍ문화변동-", 창립 10주년 기념 2020년 정기학술대회 발표자료집 중부고고학회 (2020)
- 大場磐雄, "日本考古學新講" (1948), あしかび書房
- 藤田亮策, "朝鮮發見の明刀錢と其遺蹟", 史學論叢 (1938), 岩波書店
- 중부지역 원삼국시대 초현기 취락의 양상, 楊平 兩水里 537-1番地 遺蹟, "박경신", 한양문화재연구원, ~, pp.한양문화재연구원 학술조사보고서 第5冊 (2018)
- 朴淳發, "漢江流域 原三國時代의 土器의 樣相과 變遷", 韓國考古學報, 23 (1989), 韓國考古學會
- 박순발, "한강유역사" (1993), 민음사
- 朴淳發, "漢江流域 原三國 및 百濟土器", The Second Pacific Basin International Conference on Korean Studies : Archaeology Seminar (1995), 東北亞細亞考古學硏究會
- 朴淳發, "漢城百濟 基層文化의 性格", 百濟硏究, 26 (1996), 忠南大學校 百濟硏究所
- 박진일, "대구 팔달동 유적 무문토기의 와질화와 그 의미", 嶺南文化財硏究, 29 (2016), 영남문화재연구원
- 박진일, "‘초기철기시대’ 폐기 제안, 청동기시대의 설정과 분기", 특별전 <한국의 청동기문화 2020> 연계 학술대회 발표자료집 (2020)
- 송호정, "기원전 시기의 사회 성격과 시대구분", 한국고대사연구, (46), pp.37~72 (2007), 한국고대사학회
- 송호정,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의 전환에 대한 역사 서술과 연구 방법론", 역사와 담론, (65), pp.111~142 (2013), 호서사학회
- 申敬澈, "熊川文化期 紀元前上限設 再考", 釜大史學, 4 (1980), 釜山大史學會
- 申敬澈, "釜山ㆍ慶南出土 瓦質系土器-이른바 熊川ㆍ金海期土器의 實體와 實例-", 韓國考古學報, 12 (1982), 韓國考古學會
- 申敬澈, "釜山 久瑞洞 출토의 瓦質土器", 嶺南考古學, 2 (1986), 嶺南考古學會
- 申敬澈, "三韓ㆍ三國時代의 東萊", 東萊區誌 (1995), 東萊區誌編纂委員會
- 沈奉謹, "三韓ㆍ原三國時代의 銅鏡", 石堂論叢, 16 (1990), 東亞大學校 石堂學術院
- 安德任, "漢江流域 初期 鐵器時代 文化 : 집터와 土器를 中心으로", 석사, 고고학, pp.1985
- 安在晧, "三韓時代 後期 瓦質土器의 編年", 嶺南考古學, 14 (1994), 嶺南考古學會
- 安春培, "原三國時代ㆍ三國時代, 韓國考古學 時代區分의 諸問題", 第10回 韓國考古學全國大會 發表資料集 (1986), 韓國考古學會
- 윤우준, "渼沙里 原三國時代 住居 연구", 석사, pp.1997
- 李南珪, "南韓 初期鐵器 文化의 一考察-특히 鐵器의 金屬學的 分析을 中心으로-", 韓國考古學報, 13 (1982), 韓國考古學會
- 이남규, "한국고고학 시대구분 논쟁의 몇 문제", 한국사 시대구분론-외부전문가 초청포럼- (2012),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 李尙吉, "漢江流域 鐵器時代 土器編年-中島式土器를 中心으로-", 碩士, pp.1992
- 李盛周, "紀元前 1世紀代의 辰ㆍ弁韓地域, 轉換期의 考古學Ⅲ-歷史時代의 黎明-", 제24회 정기학술대회 발표자료집 (2000), 韓國上古史學會
- 이성주, "原三國時代의 無文土器 傳統-硬質無文土器 鉢과 甕 製作의 地域性과 그 意味-", 韓國基督敎博物館誌, 7 (2011),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 李盛周, "江陵 安仁里유적의 中島式無文土器, 강릉 안인리유적을 통해 본 강원 영동지역 철기시대 문화양상", 강릉 안인리유적 발굴 20주년 기념 학술대회 (2012)
- 이성주, "철기시대 東北亞 제 지역사회의 技術革新과 社會變動 -新製陶技術의 擴散과 受容의 과정을 중심으로-", 선사와 고대, (38), pp.193~226 (2013), 한국고대학회[DOI]
- 李盛周, "原史考古學의 새로운 주제, 한국 상고사 재정립을 위한 동북아와 유럽의 역사학 및 고고학의 학제적 연구", 제44회 정기학술대회 발표자료집 한국상고사학회 (2016)
- 이성주, "원사시대의 사회문화변동" (2018), 진인진
- 李在賢, "弁ㆍ辰韓 社會의 발전과정-木槨墓의 출현배경과 관련하여-", 嶺南考古學, 17 (1995), 嶺南考古學會
- 이창희, "선ㆍ원사시대 울산의 대외교류, 대외교류를 통해 본 울산", 2019년 울산대곡박물관 개관 10주년 기념 학술자료집 (2019), 울산대곡박물관
- 이청규, "선사에서 역사로의 전환 -原三國時代 개념의 문제-", 한국고대사연구, (46), pp.73~100 (2007), 한국고대사학회
- 李賢惠, "原三國時代論 檢討", 韓國古代史論叢, 5 (1993), 駕洛國事蹟開發硏究院
- 李弘鍾, "中島式 土器의 成立過程", 韓國上古史學報, 6 (1991), 韓國上古史學會
- 이희준, "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 再論", 한국고고학보, 52, pp.69~94 (2004), 한국고고학회
- 정인성, "樂浪土城의 土器", 한국고대사연구, 34, pp.71~124 (2004), 한국고대사학회
- 정인성, "樂浪土城의「滑石混入系」土器와 그 年代", 백제연구, (40), pp.1~31 (2004), 백제연구소
- 정인성, "關野貞의 낙랑유적 조사 ? 연구 재검토 - 일제강점기「古蹟調査」의 기억 1 -", 호남고고학보, 24, pp.139~156 (2006), 호남고고학회
- 정인성, "‘瓦質土器 樂浪影響說’의 검토", 영남고고학, (47), pp.5~44 (2008), 영남고고학회
- 6. 가평 대성리유적 출토의 외래계 유물, 加平 大成里遺蹟, "정인성", 京畿文化財硏究院, ~, pp.學術調査報告第103冊 (2009)
- 정인성, "東北아시아에서 打捺文短頸壺의 擴散-中島式 打捺文短頸壺의 이해를 위해-", 韓國基督敎博物館誌, 7 (2011),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 정인성, "원삼국시대 연대론의 제문제-낙동강유역권에서 와질토기의 성립-, 원삼국시대 연대론의 제문제", 개원2주년 기념 초청강연회 자료집, ~ (2011)
- 정인성, "衛滿朝鮮의 鐵器文化", 백산학보, (96), pp.39~77 (2013), 백산학회
- 정인성, "韓國考古學史에서 ‘原三國時代’와 김해패총", 선사와 고대, (46), pp.165~192 (2015), 한국고대학회[DOI]
- 정인성, "韓國考古學에서 ‘初期鐵器時代’ 그리고 ‘古朝鮮時代’", 한국상고사학보, 106(106), pp.25~49 (2019), 한국상고사학회[DOI]
- 鄭澄元, "韓國上古史" (1989), 韓國上古史學會, 民音社
- 鄭澄元, "終末期 無文土器에 관한 硏究", 韓國考古學報, 20 (1987), 한국고고학회
- 조진선, "금속유물로 본 한국 청동기-초기철기시대의 시기 구분-, 청동기시대의 설정과 분기", 특별전 <한국의 청동기문화 2020> 연계 학술대회 발표자료집 (2020)
- 千寬宇, "三韓의 國家形成(上)", 韓國學報, 2(1) (1976), 一志社
- 千寬宇, "三韓의 國家形成(下)", 韓國學報, 3 (1976), 一志社
- 崔夢龍, "4. 原三國時代-회고와 전망 및 문제점-", 韓國考古學年報, 10 (1983), 서울大學校博物館
- 崔夢龍, "韓國考古學의 時代區分에 대한 약간의 提言", 韓國史學論叢 (1987), 探求堂
- 崔夢龍, "韓國上古史" (1989), 民音社
- 崔茂藏, "韓國 先史時代의 骨器", 文化財, 10 (1976), 國立文化財硏究所
- 崔秉鉉, "昌山金正基博士 華甲記念論叢" (1990), 昌山金正基博士 華甲記念 論叢刊行委員會
- 崔秉鉉, "原三國土器의 系統과 性格", 韓國考古學報, 38 (1998), 韓國考古學會
- 최병현, "한국 고고학 강의" (2007), 사회평론
- 최병현, "학문연구의 동향과 쟁점-고고학- 6" (2017), 대한민국학술원
- 崔盛洛, "原三國期 土器의 變遷과 問題點", 嶺南考古學, 5 (1988), 嶺南考古學會
- 崔盛洛, "韓國考古學에 있어서 年代問題", 韓國考古學報, 23 (1989), 韓國考古學會
- 최성락, ""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 재론"에 대한 반론", 한국고고학보, 54, pp.105~118 (2004), 한국고고학회
- 최성락, "한국고고학 시대구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한국사 시대구분론-외부전문가 초청포럼- (2012),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 崔鍾圭, "陶質土器成立前夜와 展開", 韓國考古學報, 12 (1982), 韓國考古學會
- 崔鍾圭, "무덤으로 본 三韓社會의 構造 및 特徵", 韓國古代史論叢, 2 (1991),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 國立文化財硏究所, "韓國考古學事典" (2001), 학연문화사
- 金想民, "東北アジアにおける初期鐵器の成立と展開", 博士, pp.2013
- 김성남, "瓦質土器論爭考" (2013), 진인진
- 金元龍, "新羅土器의 硏究" (1960), 乙酉文化社
- 金元龍, "韓國考古學槪論" (1972), 東出版
- 金元龍, "韓國 考古學 槪說" (1973), 一志社
- 金元龍, "韓國考古學槪說" (1986), 一志社
- 金元龍, "韓國考古學槪論" (1977), 一志社
- 藤田亮策, "朝鮮考古學硏究" (1948), 高桐書院
- 梅原末治, "朝鮮古代の文化" (1946), 高桐書院
- 朴淳發, "百濟 國家의 形成 硏究", 박사, 고고미술사학, pp.1998
- 李基白, "韓國史新論" (1967), 一潮閣
- 左藤虎雄, "日本考古學" (1935), 國史講座刊行會
- 崔盛洛, "全南地方 原三國文化의 연구", 박사, 고고미술사학, pp.1992
- 崔盛洛, "韓國 原三國文化의 硏究" (1993), 學硏文化社
- 崔鐘圭, "三韓考古學硏究" (1995), 書景文化社
- 八木裝三郞, "日本考古學" (1899), 嵩山房
- 坪井正五郎, "人類學と近似諦學との區別", 東京人類學會雜誌, 101 (1894)
- 坪井正五郎, "日向に於ける先史原史の古物遺跡", 東京人類學會雜誌, 158 (1899)
- 한국고고학회, "한국 고고학 강의" (2007), 사회평론
- 後藤守一, "日本考古學" (1930), 四海書房
- 風納里土城內包含層調査報告, "金元龍", ~ (1967)
- 中島Ⅰ, "李健茂", 國立中央博物館, ~, pp.國立博物館 古蹟調査報告 第十二冊 (1980)
- 慶尙南北道忠淸南道古蹟調査報告-一金海貝塚-, "藤田亮策", 朝鮮總督府, ~, pp.大正十一年度古蹟調査報告 第一冊 (1924)
- 水野淸一, "對馬" (1953), 東亞考古學會
- 朝鮮總督府, "大正九年度古蹟調査報告 第一冊" (1923)
- 中島Ⅲ, "池健吉", 國立中央博物館, ~, pp.國立博物館古蹟調査報告 第十四冊 (1982)
- 利川 孝養山遺蹟 발굴조사 보고서, "湖巖美術館", ~ (19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