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당의 이합집산과 당진지역 걸립패의 활동
Repeated reorganization of Namsadang and Activities of Gulrippae in Dangjin Area
0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국문초록】 이 글은 1960년대 중반 민속극회남사당이 출현하기까지 충남 당진에 은거하던 정일파, 최성구 등 남사당 예인들과 두레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꽃피운 당진 지역 걸립패의 활동에 주목한 연구이다. 남사당놀이와 당진의 마을농악이 걸립과 전수를 통해 습합된 내력과 양상들을 포착했다. 특히 최성구와 같이 이름난 예인들을 초빙하여 마을에 기거하게하고 마을농악을 전승하던 내력에 천착하였다. 남사당으로 활약하던 정일파의 영향으로 쇄납 연주자의 활약이 도드라졌으며, 마을 상쇠나 쇄납쟁이의 이름을 내건 걸립패들이 성행하였다. 기량 좋은 재주꾼들은 걸립패를 따라 마을 밖으로 떠나기도 했다. 남사당패가 해산된 이후 심우성의 주도로 다시금 재결성하게 되기까지 내막을, 당진에 은거하던 최성구을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다. 외지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떠돌던 예인들이 당진과 서산 등지에서 마을 주민들에게 남사당놀이를 전파하던 내력도 확인된다. 부포놀이가 뛰어났던 최성구는 직접 인형을 깎아 진관리 주민들에게 꼭두각시놀음을 선보이고, 대접돌리기나 열두발상모놀이 등을 가르쳤으며, 인근 마을에 초청되어 농악을 가르쳤다. 또한 최성구와 교류가 잦던 정일파, 전근배, 송순갑 등의 뛰어난 예인들의 인맥을 따라 그들의 기예도 전승경로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들의 교류관계와 기예 학습과정을 통해 최성구의 기예 습득 과정도 가늠할 수 있다. 최성구의 대접돌리기나 버나놀이, 박첨지놀이 등은 김승서와 송순갑, 남운용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어린 시절 최성구는 송순갑과 함께 심선옥패에 가담하여 걸립을 다녔다. 아산만을 건너면 바로 안성장이 나오는 내포지역 특유의 입지조건은 남사당의 유입 동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농악에 애착이 깊은 마을 유지들은 남사당의 적극적인 후원세력으로서 자임했으며, 떠돌이로 생계를 유지하던 남사당의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남사당패에 대한 학문적 열정으로 남사당패의 재결성과 문화재지정에 관여하면서 예인들의 생계유지에 힘을 실어준 민속학자 심우성도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본고에서는 실증적인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당진농악의 공연예술적 면모를 갖추게 이끈 뜬쇠들의 활동과 남사당의 활동반경, 마을 단위 농악 전승의 맥락과 가락과 판굿 등의 연행양상과 활동반경 등을 살폈다.
Abstract
This study focused on entertainers (e.g., Ilpa Jung and Sunggu Choi), who were retired to hermitage in Dangjin, Chungnam, and the scope of movement and the origin of Gulrippae based on the Dure culture until the Minsok-Gukhoi-Namsadang appeared in the middle of 1960s. Several circumstances indicated that Namsadang plays and Maul Pungmul were merged through Gulrip and Junsu or talented entertainers were took out of a town. Ilpa Jung, who was a member of a Nasadang group, was active. Several Gulrippaes, named after Maul Sangsoi or Soinapjangi, were active as well. It is especially interesting that famous entertainers such as Sunggoo Choi was invited to a town and asked to teach Pungmul. It is possible to grasp the inside story of how a Namsadang group was reorganized by Woosung Sim after it was disbanded by focusing on stories revolved around Sunggu Choi, who was retired to hermitage in Dangjin. It can be confirmed that entertainers worked as farmhands in other areas and they taught Namsadang plays to the locals in Dangjin and Susan areas. Sunggu Choi had an excellent Pupo play ability and he carved dolls by himself to show Ggokdugaksi play. He taught bowl spinning or long-ribbon-hat plays to locals. He was invited to nearby towns and taught them Pungmul. Other excellent entertainers such as Ilpa Jung, Kunbae Jun, and Soongap Song interacted with Sunggu Choi and their techniques could be transmitted through the personal connection. Soongap Song was about 4-5 years older than Sunggu Choi. They played in the Simjunok group together for several months and they went on Gulrip together. It is possible to identify the transmission path of Sunggu Choi’s technique through the interaction between Soongap Song and Sunggu Choi and the technique learning process of Soongap Song. It seems that Sunggu Choi learned bowl spinning, Parkchumji play, and so forth under the influence of Sungsu Kim, Soongap Song, and Woonyong Nam. Ansung-jang was right across the Asan bay in the Naepo region. The unique site characteristic of the Naepo region was good enough to induce Nasadang. Community leaders had affinity to Pungmul to support Namsadang actively. They played a critical role for the survival of Namsadang, who were wonderers and barely made a living. Woosung Sim was a folk scholar. He was involved in the reorganization of Namsadang group and designating them as a cultural asset with academic passion. He was a reliable support. This paper evaluated the activities of Ddunsois, who helped Dangjin folk music have performing art characteristics, the scope of Namsadang’s movement, the town unit folk music transmission pattern, and the performance aspects and the movement range Garak and Pangut based on empirical field surveys.
참고문헌 (37)
- 김선태, "공동체의 표상으로서 마을기의 형상과 의미", 박사, 민속학과 민속학전공, pp.2013
- 김세하, "남사당 덜미 재담의 변화양상", 남도민속연구, (25), pp.7~46 (2012), 남도민속학회
- 김영희, "안성남사당풍물놀이 구술채록 자료집" (2009), (주)작품오늘
- 김용원, "보전되어야하는 당진의 두레풍물", 당진문화, (41) (2014), 당진문화원
- 김용원, "두레풍물", 두레풍물보존회, ~
- 김정헌, "호남좌도농악 연구", 박사, 국어국문학, pp.2008
- 대전직할시, "대전웃다리농악" (1991)
- 무라야마지준, "조선의 향토오락" (1992), 조선총독부, 집문당
- 서연호, "한국 전승연희의 원리와 방법" (1997), 집문당
- 서연호, "꼭두각시놀음의 역사와 원리" (2001), 연극과 인간
- 서연호, "신명나는 서산 박첨지 놀이", 문화예술 (1989), 한국문화예술진흥원
- 서종원, "인천 지역 남사당 연구 - 지운하 선생의 구술 자료를 중심으로 -", 인천학연구, 1(22), pp.7~35 (2015), 인천학연구원
- 송정은, "남사당 풍물굿에 내재된 현대적 수용가치에 관한 연구", 한국체육헐학회지, 6 (1998), 한국체육철학회(구 한국스포츠무용철학회)
- 신석호, "속음청사(續陰晴史)" (1960), 국사편찬위원회
- 심우성, "제1차 구술채록문: 유년과 청년시절의 기억", 한국예술디지털아카이브, ~ (2012)
- 심우성, "제2차 구술채록문: 전통예술과의 만남", 한국예술디지털아카이브, ~ (2012)
- 심우성, "한국의민속극" (1975), 창작과비평사
- 이경엽, "서남해 지역의 남사당 관련 민속연희와 연희자 연구", 공연문화연구, 5 (2002), 공연문화학회
- 이경엽, "전남의 민속극 전통과 광대(탈) 전승", 전통문화연구, 3 (2004), 용인대학교 전통문화연구소
- 이경엽, "법성포단오제의 축제적 기반과 무속적 전통", 남도민속연구, (14), pp.63~92 (2007), 남도민속학회
- 이금돈, "당진웃다리농악보존회 : 당진농악" (2010), 상록출판
- 임재해, "꼭두각시놀음 연희본들의 변이양상과 전승양상", 한국민속학, 41, pp.333~386 (2005), 한국민속학회
- 장충덕, "남사당패의 은어에 대하여", 한국어 의미학, 28, pp.227~256 (2009), 한국어의미학회
- 정수진, "무형문화재의 관광자원화와 포클로리즘-안성의 아이콘,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놀이를 중심으로-", 한국민속학, 49, pp.57~84 (2009), 한국민속학회
- 정형호, "농악 용어의 역사적 사용과 20세기 고착화 과정에 대한 고찰", 한국민속학, 62, pp.77~114 (2015), 한국민속학회
- 주강현, "한국의 두레 1" (1997), 집문당
- 주강현, "한국의 두레 2" (1997), 집문당
- 주강현, "서산박첨이놀이" (2011), 민속원
- 주강현, "구술사로 본 안성 남사당패", 역사민속학, 18 (2004), 역사민속학회
- 최락용, "남사당패의 어릿광대들 연구", 한국극예술연구, (43), pp.13~61 (2014), 한국극예술학회
- 허용호, "서산 박첨지 놀이 연구", 구비문학연구, 10 (2000), 한국구비문학회
- 허용호, "토박이 광대패 인형극의 전승 양상 -서산시 음암면 탑곡 마을의 서산박첨지놀이를 중심으로-", 구비문학연구, (20), pp.167~244 (2005), 한국구비문학회
- 당진뉴스, "송악출신 노종선회장 풍물전수 위한 수련", ~ (2000)
- 당진시대, "농악 전통성 계승 할 것 : 당진내포농악보존회창립", ~ (2015)
- 충청투데이알짜뉴스, "故정일파선생을기린다", ~ (2010)
- "경향신문", ~
- "동아일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