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군에서의 기독교 전파를 통한 여성 교육과 여성 의식 변화와 애국계몽운동
Christianity Propagation of Namyang and Women Education and Patriotic Enlightenment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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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근대 여성교육은 여성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근대여성교육은 메 리 스크랜턴이 서울에 이화학당을 세우면서 시작되었으나, 처음에는 근대교 육에 대한 무지, 여성교육에 대한 무관심, 외국인들에 대한 공포가 겹쳐 학 생 모집이 어려웠다. 그 이후 지방으로 복음이 전파되면서 지방에도 여학교 들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인천 내리교회가 남양에 복음을 전파하여 1899년에 교회가 세워지면서 1902년에 이르면 남양군에 9개의 교회들이 세워졌다. 1902년에 남양에 제하 여학교와 함께 9개 교회 내에 여학교들이 세워졌다. 이러한 학교들에서 안 이리사벳이 교사가 되어 소녀들뿐만 아니라 부녀자들에게 한글과 산수를 가 르쳤으며, 특히 한글을 가르쳐 이들이 사경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안 이리사벳은 교사이면서 동시에 전도부인의 역할을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러한 교육과 복음전파를 통하여 많은 여성들이 자신 들의 주체성을 확립하면서 근대적인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1906년에 이르면 보흥여학교와 양정의숙 등이 설립되었고, 보흥여학교에 는 많은 여성들이 찬성원으로 참여하여 여성교육을 후원하였으며, 여성들이 기독교 신앙을 가져 세례를 받으면서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어려서부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보흥여학교 학생들 과 찬성원들은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다. 양정의숙의 여학생들은 서울에 서 처음으로 여학생연합운동회가 열리던 1907년에 남학생들과 함께 운동회 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러한 운동회의 참석은 여성들이 근대교육과 함께 체육교육을 받게 되 었을 뿐만 아니라 남자들과 함께 경쟁에 참여하고 함께 애국가와 운동가를 부르면서 단합심과 애국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성 들은 의성회를 조직하여 남양에서 제일 먼저 100명이 넘게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고 서울에서 1906년에 조직되었던 여자교육회 지부를 남양에서 조 직하여 여성교육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교육까지 후원하게 되었다. 이와 같 이 남양에서는 복음이 전파된 후에 여성교육기관이 설립되어 여성교육을 담 당했을 뿐만 아니라 근대의식과 민족의식을 자각한 여성들이 애국계몽운동 단체를 만들어 애국계몽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였다.
Abstract
Korean modern women’s education was begun by the female missionaries. It had a start when Mary Scranton built the Ewha school in Seoul in 1886. But at first, it was very difficult to recruit students because of the ignorance of modern education, the indifference of women’s education, and the fear about foreigners. Afterwards as the Gospel was spread into the countries, girls’ schools began to be established in the regions. Incheon’s Naeri Church evangelized at Namyang and the church was built in 1899 and the nine churches were founded in Namyang Gun in 1902. At the same time Jeha Girls’ School and the nine girls’ schools in churches were established. An Elizabeth taught girl-students and women reading and arithmetic. When they learned the Hangul, they could attend the Bible Class to be church teachers and Bible Women. An Elizabeth evangelized many people as a teacher as well as a Bible Woman. As a result, many women had their own identity and modern consciousness through education and evangelism. In 1906 Boheung Girls’ School and YangJung EuiSook were set up. At Boheung Girls’ School many women participated in the supporters association. Many women had their own names which were given when they were baptized. All girls students had names when they went to school. And they partook in the National Debt Repayment Movement. YangJung EuiSook’s girls attended the regional joint sport meeting in 1907 in which the first girls joint athletic meeting was held in Seoul. This participation means that girls not only received a modern education and physical training but also competed with the boys and had the spirit of unity and patriotism singing the song of sport and the Korean national anthem with them. And Women organized EuiSeungHoi which had more than one hundred members and collected a lot money at the National Debt Repayment Movement. They also made a branch of the Women’s Education Society which was organized in Seoul in 1906. This branch supported the female education as well as the male education. On this like, at Namyang after the Gospel was propagated, the girls’ schools were established and they were in the charge of the female education. Women who were armed with the modern consciousness and national awareness made the patriotic enlightenment institutes and developed the patriotic enlightenment movement systematic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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