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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4~11세기 요서지역 토착문화와 중원문화의 상관성 검토 - 묘제 양상의 비교를 중심으로

Antagonistic Relationships between Indigenous Culture of the Liaoxi Region and Zhongyuan Culture in the 14th-11th Century B.C.: Focusing on Comparison of Tomb Patter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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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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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4~11세기 요서지역의 토착문화는 魏營子文化로 대표되며,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분포범위는 大·小凌河流域으로 한정되며 중심연대는 상주 교체기, 하한연대는 기원전 10세기 무렵이다. 둘째, 해당문화의 구성원들은 자체적인 청동기 제작기술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그렇기에중원계 청동예기는 유사한 문화내용을 보이는 河北지역 주민집단과의 교류 속에서 제한적으로만 확보할 수 있었다. 셋째, 이들의 생계방식은 소규모의 정주생활이 인정되지만, 농경의 흔적은 극히 제한적이며, 수렵과 목축 위주의 생활방식을 유지하였다. 넷째, 묘제와 장속 특징 및 생활토기의 유사성에서 高臺山 文化와 친연성이 강하다. 다섯째, 당지의 선행문화인 夏家店下層文化와는 생계방식과 부장 특징 및 시간적 단절성 등 측면에서 고려할 때 상호 이질성과 비연속성이 강하다. 마지막으로 화변구연력의 보편적 사용과 초원계 장신구류의유행이라는 측면에서 魏營子文化의 형성과정에는 초원계 물질문화가 일정부분 개입되어 있다. 다만 그 핵심이 되는 청동 도구나 무기류가 부재한 점에서 주변집단에 대한 약탈적 생계방식은 고려될 수 없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위영자문화의 성격과 형성과정을 구체적으로 논증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중원지역과의 상관성 문제를 묘제 양상의 비교를 중심으로검토하였다. 결론적으로 묘제와 장속 특징에 반영된 魏營子文化人들의 정신문화 속에는 그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적으로 받아들였을 외래계의 물질문화와 대비되어, 상당히 보수적이고 독특한 풍격의 전통이 고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외래계 토기의 대표격인 화변구연력이 그들의 정신문화를 반영해주는 부장품 내역에는 포함되지 못한 점, 비록 청동예기나 동경 등 외래계 요소가 부장품내역에 포함되어 있지만, 이는 위세품의 성격이 강한 점, 주검의 두향을 통일시킴으로서 자신들의 사후인식과 행보를 결정하고 기원한 점, 중요 부장품을 발치쪽에 배치함으로서 그에 대한 사후 용도를 스스로 선택하고 그 가치를 재규정한점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정황에서 볼 때, 요서지역에서 확인되는 중원계 문화요소는 중원세력의 직접적인 진출이라기보다는 외래문화의 유입에 대한 토착문화의 대응으로서, 소위 요서와 중원 두 지역집단 간의 상호작용이나 문화변용의 측면에서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Indigenous culture in the Liaoxi region in the 14th–11th century B.C. was represented by Weiyingzi culture. This study newly defines the culture of which characteristics and nature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as for the scope of distribution, the culture was distributed restrictively to Dalinghe and Xiaolinghe basins. The period was assumed to be 13th–10th century B.C., which was characterized by a transition period of the Shang Dynasty and the Zhou Dynasty. Second, people of the culture did not have their own production technology for bronzeware. The ritual bronzeware in the Zhongyuan-line culture could be restrictively obtained through exchanges with the residents in Hebei who showed similar cultural characteristics. Third, although their means of living were recognized in a small-sized settlement, farming was rarely detected. Their primary means of living were hunting and cattle breeding. Fourth, they had a strong affinity to Gaotaishan culture in terms of the characteristics of tomb systems and funeral ritual services. Fourth, compared with Lower Xiajiadian culture, which was prior to the Weiyingzi culture, it had a strong heterogeneous nature and discontinuity in consideration of means of living, burial characteristics and time discontinuity. Lastly, in the aspect of universal use of Habiankouyanli and boom of steppe-style accessories, part of Material Culture of the Steppe was involved in the formation process of Weiyingzi culture. However, it was not considered that they used predatory means of living against neighbor groups due to the absence of bronze tools or weaponry. This study specifically demonstrates the formation process and the characteristics of Weiyingzi culture. Based on the findings, it also investigates correlations with the culture in the Zhongyuan region through comparison of their tomb systems. In conclusion, it has been found that people in Weiyingzi culture were stuck to very conservative and unique tradition of their own, which was reflected in their tomb systems and funeral services. It was contrasted with foreign material culture, which they had to selectively accept for survival. Those aspects are shown in the fact that Habiankouyanli, a representative foreign earthenware, was not found in the grave goods, which reflected their spiritual culture; that although ritual bronzeware and bronze mirrors, foreign cultural elements, were contained in the list of grave goods, they were used for the purpose of showing off the authority of the high class; that they decided their own post-mortem performances with self developed recognition on the post-mortem world by unifying the direction of the head of the deceased in the tombs; and that they selected the post-mortem usages of main grave goods by putting them at the feet side of the deceased and defined the values of the goods by themselves. With that said, the Zhongyuan-line cultural aspects found in the Liaoxi region could be considered as a reaction of the indigenous culture against influx of foreign cultures, rather than direct advance of Zhongyuan power. It could be considered that there was antagonistic relationship between the cultures in two regions of Liaoxi and Zhongyu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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