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철종 14) 徽慶園의 遷園 과정과 특징
Moving of the Hwi’gyeong-weon(徽慶園) Grave in 1863(King Cheoljong’s 14th year): Process and Characteris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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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요 소재인 휘경원은 수빈 박씨의 무덤이다. 휘경원은 후궁의 무덤임에도 1855년과 1863년에 각각 2번이나 옮겨졌다. 이번에는 1863년 2차 천원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천원의 주요 배경은 왕위 계승의 정통성에 취약한 철종이 종묘와 왕실의 무덤을 통해 그것을 보완하고자 재위 기간 동안 노력한 결과 중 하나였다. 철종은 천원의 제기와 무덤 자리의 결정에 적극적으로 간여했으며, 결국 자신이 예전부터 마음에 두었던 달마동으로 정하여 순강원에서 달마동으로 휘경원을 옮겼다. 휘경원을 옮기는 과정에서 의식 절차와 용어, 의물 등은 1차 천원을 할 때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1차 천원할 때처럼 세자나 세자빈의 신분에 준해야 쓸 수 있는 용어와 의물들이었다. 수빈에 대한 대우나 위상은 순조대 상장례를 치를 때 일반 정1품 후궁 보다는 높은 세자빈 예장에 준했는데, 그것이 철종대 1차와 2차 천원을 할 때에도 변화하지 않았던 것이다.
Abstract
Hwi’gyeong-weon(徽慶園) was the grave of Royal Concubine Subin Park(綏嬪朴氏). It was a grave for a concubine and not a queen, but was relocated twice nonetheless, first in 1855 and then again in 1863. It is the second moving(Cheon’weon, 遷園) that is examined here in this article. The reason it was moved (once gain) was because King Cheoljong, whose leadership was weak due to his own questionable enthronement, was desperate to reinforce his authority by rearranging certain graves of royal family members as well as the dynastic shrine itself. He was more than active in arguing the necessity of moving Subin Park’s grave, as well as deciding the new location for it. And after picking Dalma-dong(達摩洞) as the new spot (after having considered it as a suitable replacement ground for a long time), the grave Hwi’gyeong-weon was moved there, from its original location which had been Sun’gang-weon(順康園). The second moving of the Hwi’gyeong-weon grave observed basically the same procedure and same ritualistic protocols including terms and items, as the first mo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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