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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최승희 무용연구소 활동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Activities of Choi Seung‐hee Dance Research Institute during the Period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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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최승희 무용연구소 설립과 활동이 한국무용계의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것으로서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최승희 무용연구소의 설립은 무용사적으로 매우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당시 무용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기관이 없었으며, 있다고 하더라도 순수예술무용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아닌 유흥적인 사교무용을 가르치는 곳이었으나, 최승희의 무용연구소가 설립되면서 한국에서도 최초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생긴 것이다. 둘째, 무용연구소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예산은 공연활동으로만 의존해야 했다. 셋째, 최승희 무용연구소의 구성원인 연구소원들을 통한 모집과정을 통해 교육정도가 높은 학생들을 모집함으로서 무용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을 주도하고자 하였다. 또한 김민자, 장추화, 이석예, 김백봉 등의 후학양성을 통해 한국무용계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넷째, 최승희 무용연구소의 공연활동을 통해 무용음악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d how the foundation and activities of Choi Seung‐hee Dance Research Institute during the period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influenced the development of the Korean dance circle, and drew conclusions as follows. First, the foundation of Choi Seung‐hee Dance Research Institute has a very significant meaning in dance history. In those days, there was no institution specializing in dance education, and even if there were, they were all for teaching entertaining social dances rather than for the education of pure art dance. With the establishment of Choi Seung‐hee Dance Research Institute, however, Korea came to have the first institution for professional dance education. Second, funds required for the operation of the Dance Research Institute had to be raised only through performance activities. Third, by selecting students through the members of Choi Seung‐hee Dance Research Institute, the institute recruited highly educated students and this led to a change in people’s perception of dancers. Furthermore, the research institute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the Korean dance circle through raising outstanding dancers like Kim Min‐ja, Chang Chu‐hwa, Lee Seok‐ye, and Kim Baek‐bong. Fourth, the performance activities of Choi Seung‐hee Dance Research Institute also had a considerable influence on the development of dance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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