宗尊親王?軍家の「家」の形式と 北?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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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초록
鎌倉막부 장군가는 源頼朝에 의한 막부 창건 이후, 源氏장군과의 혈연관계에 의해 유지되지 못하고 源氏․摂家․親王장군으로 異姓의 장군이 계승하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나 종래의 연구사의 관심이 초대 장군 頼朝를 중심으로 하는 源氏장군가에 모아지고 있다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일련의 연구속에서 그 내부구조가 거의 해명되지 않고 있는 摂家․親王장군의 이에에 주목하여 鎌倉 중후기의 정치사를 재조명하는 의도를 갖고 있다. 특히 천황가의 자녀인 친왕은 4대에 걸쳐 장군에 취임하고 있는데 본고에서는 摂家장군의 멸망 이후에 탄생하는 최초의 친왕장군 宗尊를 중심으로 고찰을 하였다. 摂家장군의 멸망이후 막부는 후계자로서 宗尊친왕을 장군으로 맞아들인다. 源氏장군이 3대로 대가 끊기면서 오랫동안 막부의 염원이었던 친왕장군 구상이 드디어 실현되는 것이다. 막부의 실권을 쥐고 있던 北条氏가 宗尊에게 기대하였던 것은 친왕이라는 신분질서를 유지하여 막부의 권위를 높이는 것에 있었음을 宗尊가 참가하는 많은 공식행사의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宗尊의 신분서열의 존중이라는 北条氏의 의식은 宗尊의 혼인에도 반영되고 있어 北条時頼와 양자관계를 맺은 섭관가의 여성, 近衛宰子를 정실로 맞아들이고 있다. 宗尊는 宰子와의 사이에 두 자녀를 출산하지만 장군취임후 14년만에 宰子의 불륜이라는 구실과 반역을 일으켰다는 풍문속에 京都로 추방된다. 宗尊의 京都송환의 배경에는 宗尊가 실제로 반역을 도모했다기 보다는 성인장군의 경질=어린 장군의 옹립이라는 北条氏의 정치구상이 확립된 결과로 이해된다. 한편 京都로 송환된 宗尊는 재혼을 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 瑞子에게 자신의 王家領를 양여하고 있다. 즉, 宗尊의 이에는 惟康라는 아들을 통해 장군직을, 瑞子라는 딸을 통해 王家領을 계승시켜 두 가지 형태로 이에의 전개를 보이고 있다. 이후, 北条氏에 의한 성인장군의 경질=어린 장군의 옹립이라는 구도는 더욱 확고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즉, 惟康․久明등으로 이어지는 장군들도 宗尊과 마찬가지로 京都로 송환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후로도 필자는 4대에 이어지는 친왕장군가의 특질에 주목하여 그 내부구조를 명확히 하고 나아가 장군가를 둘러싼 北条氏․천황가등의 관계를 통해 鎌倉후기의 정치사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