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대구 解西部面의 戶口總數 유지 배경과 그 성격 -해서부면 일대의 호적대장과 『역중일기』교차 분석을 중심으로-
Background and Characteristics of the Population Maintenance of 'HaSeobu-myeon(解西部面)' in Daegu in the 18th Century -Based on the cross-analysis of the family register and the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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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8세기 대구 해서부면 일대의 지역적 沿革을 바탕으로 해서부면을 포함한 해동촌면, 해서촌면, 해북촌면 등 4개 행정 면의 호구총수 추이를 살펴보았다. 특히, 해서촌면에서 1747년, 1762년, 1768년에 戶總이 평균 이하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해당 식년은 모두 해서부면 일대의 전염병이 창궐한 시기로 확인되었다. 즉, 재해기간 해서촌면의 호총이 급격하게 떨어진 반면, 해서부면 호총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는 것이 『역중일기』와 호적대장의 교차 검증을 통하여 확인되었다. 한편, 인접한 지역이었던 해서부면과 해서촌면에서 재해 기간 발생한 호총 추이의 차이는 해당 지역의 戶口 구성에서 비롯되었다. 해서부면의 경우 상층 호의 비율이 높았던 반면, 해서촌면은 중층 호의 비율이 높았다. 재해기간 호총 유지를 위하여 일부 호에서 分戶를 통하여 호총을 채우는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상대적으로 상층 호가 많았던 해서부면에서는 상층에서 분호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호총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해서부면과 그 주변의 행정 면은 지역적 특성에 기반하여 面政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이는 대구부 도심의 행정력 분배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지역 단위로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전략 중 하나였다.
Abstract
The difference in the number of populations that occurred during the disaster in 'HaSeobu-myon' and 'Haeseochon-myeon', which were adjacent areas of downtown Daegu, originated from the population composition of the area. In the case of 'HaSeobu-myeon', the upper-class population was large, while 'Haeseochon-myeon' had a high proportion of the middle-class population. In order to maintain the number of populations during the disaster, some households played a role in filling the population through the branch, and in HaSeobu-myon, where there were relatively many upper-level households, the population was kept stable as the upper-level population was actively divided. In addition, this phenomenon also resulted in an increase in the proportion of the upper-class population in the family register after the disaster period. In other words, 'HaSeobu-myon' and the surrounding administrative aspects were able to stably maintain the Myeonjeong based on regional characteristics. This was one of the strategies to reduce the burden on the distribution of administrative power in downtown Daegu and maintain stability at the regional 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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