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기 호구 변동의 의미 - 평안북도 정주군 해산면 호적대장과 목장양안 비교 분석 -
Interpretation about the Fluctuationof Households from the Household Registersof the Korean Empire, 1899~1900
0
조회
0
다운로드
5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고에서는 대한제국기 호적대장에 드러난 호구 변동의 의미를 고찰하였다. 이를 위하여 광무 3, 4년에 편찬된 평안북도 정주군 해산면 호적대장과 광무 3, 6년에 제작된 해산면 2리 소재 목장양안의 기록을 비교하여 분석하였다. 두 자료는 모두 비슷한 시기 같은 지역에 기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등재하고 있기 때문에, 각 자료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면 시간 순으로 변화상을 포착할 수 있다. 중앙 정부에서 천명한 호구 조사의 원칙은 개별 세대의 실제 거주 현황을 파악하여 호적에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었으나, 자료 분석 결과 실제 호적에 등재된 호는 개별 세대의 거주 상황이나 거주 변동과는 다른 차원에서 파악되었다. 목장양안과의 비교 결과 호적에 여러 개별 세대가 하나로 합쳐져 한 호로 등재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호적에서 호가 탈락했는데도 실제로 그 지역에 계속 살고 있기도 하였고, 어떤 동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 확인되는데도 호적에서는 다른 동 호적에 기재되기도 하였다. 즉, 호적상 호구 변동이 실제 사람들의 거주와 무관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지방 관청의 행정적 필요를 반영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대한제국기에도 이전 시기의 관행에 따라 중앙정부에서 군현별로 파악된 호총에 근거하여 부세량을 결정하고, 각 군현에서는 이를 호수에 따라 각 행정 단위로 분배하였다. 즉 각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부세 행정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각 행정 단위에서는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개별 세대를 호적에 기록하지 않고, 특정한 원칙에 따라 호를 구성하거나 차정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따라 해산면 2리의 경우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 리는 물론이고 동별로까지 호수를 철저하게 맞추고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Abstract
This paper sheds light on the meaning of fluctuation of households recorded on the household registers complied during the Korean Empire(Gwangmu Empire, 1897~1910). The records of households and people written on the consecutive household registers-compiled in 1899 and 1900-of Haesan-myeon, Jeongju-gun, Pyeonanbukdo Province are analyzed and compared to the records of people written on the two sets of Haesan-myeon state-owned farmland registers, complied in 1899 and 1902. These two kinds of documents produced by local administration sometimes grasped the same people who lived in this area and had duty to pay land tax on account of cultivating the state farmland. The central government of the Korean Empire clarified that every single household and person lived in a specific ‘myeon’, an administrative district, had to be grasped and recorded on the household register of that region. In other words, household registers during this time had to grasp natural households and show the actual residence of people who lived in that administrative district. However, based on this comparative analyses of the records of household registers and state farmland registers, multiple natural households could be recorded as a single household on household registers. And it was possible that people who consecutively lived in the same region could be dropped out of the household registers, or could be recorded on a different region. That is, a household on the household registers during this time was differentiated from a natural household and household registers did not grasp every single natural household and person in the area. On the one hand, there was no borderline of an administrative district, particularly a ‘dong(洞)’, the smallest unit of administration. On the other hand, the contents of household registers could be affected by the intention of a local administration responding the pressure of household taxes levied on a administrative district. Determining the definition of a “household” or setting the total number of households of a region was up to the local administration as occasion demands.
참고문헌 (31)
- "平安北道定州郡戶籍表案第九海山", ~ (1899)
- "平安北道定州郡戶籍表案第九海山", ~ (1900)
- "定州郡所在海山二里牧場土量案(奎19634,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
- "平安北道定州郡海山面二里牧場土田畓尺量成冊(奎22200,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
- "承政院日記", ~
- "朝鮮王朝實錄", ~
- "增補文獻備考", ~
- "廣輿圖 (奎古4790-58,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
- 김정호, "大東輿地圖 (奎10333,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
- "近世韓國五萬分之一地形圖" (1914)[URL]
- 警務顧問部, "(明治四十年五月調査)韓國戶口表" (1907)
- 朝鮮總督府 內部警務局, "(隆熙四年五月十日調査)民籍統計表" (1910)
- 越智唯七, "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1917)
- 朝鮮總督府 朝鮮臨時土地調査局, "(近世)韓國五萬分之一地形圖" (1914)
- 이태진, "朝鮮時代私撰邑誌" (1990), 韓國人文科學院
- 김건태, "대한제국 호적과 양안의 상호 관련성", 한국사론, 64 (2018), 서울대학교
- 김건태, "조선후기 마을위상과 전세량의 관계", ‘조선시대 사회 조직과 공동체의 운영원리-호혜의 협동의 사례 탐구’ 발표문 (2018), 한국학중앙연구원
- 金泳謨, "韓國社會階層硏究" (1982), 일조각
- 박성준, "經理院의 驛屯土 문서 분류와 분류 체계의 변형", 규장각, (32), pp.213~256 (2008), 규장각한국학연구원[DOI]
- 박진태, "대한제국의 토지조사사업" (1995), 민음사
- 배영순, "韓末 驛屯土調査에 있어서의 所有權紛爭-光武査檢期의 紛爭事例에 대한 分析을 중심으로", 한국사연구, 25 (1979), 한국사연구회
- 손병규, "대한제국기의 호구정책― 丹城 培養里와 濟州 德修里의 사례", 대동문화연구, (49), pp.197~237 (2005), 대동문화연구원
- 오성, "戶籍으로 본 韓末 농촌지역의 戶의 구성-京畿道 廣州府 北方面을 중심으로-", 한국근현대사연구, 18 (2001), 한국근현대사학회
- 이세영, "대한제국기의 호구변동과 계급구조", 역사와현실, 7 (1992), 한국역사연구회
- 이영학, "대한제국의 토지제도와 근대" (2010), 혜안
- 이영훈, "대한제국기의 토지제도" (1990), 민음사
- 이유진, "광무호적의 호구변동 사례 연구 - 광무 3, 4년 평안북도 정주군 해산면 호적을 중심으로 -", 역사민속학, (51), pp.25~48 (2016), 한국역사민속학회
- 이정주, "구한말 호적에 나타난 성별․연령별 인구 구조의 특징", 한국학연구, (46), pp.53~71 (2017), 한국학연구소
- 임학성, "20세기 초 慶南 草溪郡 주민의 거주 양상-光武 11년(1907) 草溪郡 初冊面․伯岩面 戶籍 자료의 분석 사례-", 한국학연구, (46), pp.9~52 (2017), 한국학연구소
- 조석곤, "대한제국기의 토지제도" (1990), 민음사
- 최원규, "대한제국의 토지조사사업" (1995), 민음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