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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동학·천도교 서술 검토

Donghak and Cheondogyo written in Korean History of High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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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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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1년부터 사용되고 있는 6개의 『고등학교 한국사』의 동학과 천도교의 서술 체계와 내용을 검토한 것이다. 먼저 동학의 서술 체계와 내용을 검토하고,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천도교의 서술 체계와 내용을 검토하고,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고등학교 한국사』에서는 동학의 창시에 관한 사항을 ‘조선 사회의 변화와 서구 열강의 침략적 접근’이라는 대단원 하의 중단원과 소단원에서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교과서는 동학이 19세기 혼란한 사회 질서를 배경으로 하여 인간평등과 사회변혁을 희구하는 새로운 사상으로 창시되었다고 있다. 각 교과서의 동학농민운동의 내용에 대한 소단원의 제목은 서로 다르다. 미래엔 컬처그룹과 삼화출판서와 지학사의 교과서는 ‘제1차 농민봉기’와 ‘제2차 농민봉기’로, 법문사 교과서는 ‘제1차 농민 봉기’와 ‘제2차 봉기’로, 비상교육은 ‘동학농민운동’으로, 천재교육은 ‘동학 농민군의 1차 봉기’와 ‘동학 농민군의 2차 봉기’로 서술하고 있다. 이는 동학농민운동의 주체와 성격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동학 서술의 체계와 내용상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단원의 제목을 동학농민운동이라고 하면서도, 소단원과 본문에서 ‘농민운동’, ‘농민 봉기’ 등으로 사용하여 동학농민운동의 주체를 ‘농민’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중단원의 제목에 맞추어 주체를 ‘동학농민’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국가교육과정에서 동학농민운동의 주체를 ‘동학농민’과 ‘농민’으로 섞어서 사용하고 있는 점을 통일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대부분의 교과서들은 동학농민운동 후 동학농민군의 잔여세력이 을미의병, 영학당, 활빈당 등 반외세적인 항일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고 하였으나, 동학농민군의 잔여세력 중 다수는 1904~5년 친일적 개화운동인 진보회(일진회) 운동을 전개하였으므로, 사실에 맞게 교과서의 서술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 앞서 동학농민운동 잔연세력의 동향에 대한 국가교육과정 서술을 변경하는 문제를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셋째,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의 신분에 대해, 미래엔 컬처그룹의 교과서는 ‘몰락한 양반 출신’으로, 법문사와 지학사의 교과서는 ‘몰락한 양반’으로 서술하였다. 그런데 최제우는 몰락한 양반 崔鋈과 再嫁女 한씨의 소생이어서 양반으로 보기 어려우므로 ‘몰락한 양반 출신’으로 표현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넷째, 법문사는 최제우가 ‘인내천’을 강조하고, 미래엔 컬처그룹과 비상교육은 동학이 ‘인내천’을 내세우고 포교하였다고 하였는데, 최제우는 ‘侍天主’, 최시형은 ‘人是天’과 ‘事人如天’, 손병희는 ‘人乃天’이란 용어를 사용하였으므로, 차라리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늘’이란 점을 강조하며 포교를 확대하였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다섯째, 대부분의 교과서에서는 동학농민군 제2차 봉기의 원인으로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과 조선 내정에 대한 간섭을 들고 있으나, 이에 더하여 ‘관군과 일본군의 동학농민군 토벌’을 첨가하는 문제도 숙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여섯째, 미래엔 컬처그룹의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출두하는 전봉준’의 화보와 지학사의 ‘잡혀가는 전봉준’, 천재교육의 ‘전봉준(1855~1895)’의 화보는 동일한 사진이나 캡션은 상이하므로, 사실 확인 후 정확한 캡션을 달아야 할 것이다. 일곱째, 동학농민군의 제2차 봉기에 대한 그림에 있어서, 법문사, 비상교육, 삼화출판사, 지학사, 천재교육의 교과서는 황해도지역의 동학농민군 봉기 사실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또, 비상교육의 ‘동학 교세의 확장과 교조 신원 운동’ 도표 중에서 ‘교조 신원 운동(1893)’이란 설명과 삼화출판사의 ‘동학의 교세 확장’이란 도표 중에서 ‘교조 신원 상소 운동(1892)’이란 설명은 ‘복합상소(1893)’ 또는 ‘경복궁 상소(1893)’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여덟째, 전거의 기재 요령을 정하고, 동일한 방식으로 전거를 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에서 다루는 천도교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Ⅴ단원 ‘근대 국가 수립 운동과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제5장 ‘민권 의식이 성장하고, 근대 문물이 들어오다’/제5절 ‘문예와 종교에 부는 새로운 바람’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항일 투쟁에 앞장선 천도교와 대종교’라는 항목에서 천도교의 성립 과정과 애국계몽운동을 다루고 있다. 다음으로 Ⅵ단원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민족 운동의 전개’에서는, 제3장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 정부’/제3절 ‘민족의 정기를 빛낸 3·1운동’에서 천도교의 3·1운동, 제3장/제4절 ‘황제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에서 연해주에서 조직된 대한국민의회의 대통령에 선임된 손병희, 제4장 ‘나라 안에서 다양한 민족 운동을 전개하다’/제2절 ‘실력을 길러야만 독립을 이룰 수 있다’와 ‘자치운동을 내세워 일제와 영합하다’라는 항목에서 천도교 신파의 최린의 자치운동, 제4장/제2절 ‘실력을 길러야만 독립을 이룰 수 있다’의 ‘6·10 만세 운동, 민족주의계와 사회주의계가 연대를 모색하다’라는 항목에서 천도교의 6·10만세운동, 제4장/제4절 ‘차별 없는 사회를 꿈꾸며’의 ‘아이에서 어린이로’라는 항목에서 방정환이 주도한 천도교의 소년운동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Ⅶ ‘전체주의의 대두와 민족 운동의 발전’이란 대단원/제3장 ‘사회 운동의 변화와 민족 문화 수호 운동의 전개’/제3절 ‘종교 활동을 통해 민족 운동에 나서다’에서는 ‘대중 운동과 문화 운동에 힘쓴 천도교’라는 항목에서 천도교 청년회와 소년회가 청년·여성·어린이 운동을 벌였으며 “개벽”, “신여성” 등의 잡지를 발간하여 평등사상과 민족의식을 고취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천도교 관련 서술 중에서 잘못되거나 표현이 적절하지 않은 다음의 사항은 재고 혹은 수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대부분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1930~40년대에 해당하는 ‘전체주의의 대두와 민족 운동의 발전’이란 Ⅶ단원에서 1920년대의 천도교의 활동을 다루고 있다. 이 서술은 체제상 적절하지 않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Ⅵ.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민족 운동의 전개’/제4장 ‘나라 안에서 다양한 민족 운동을 전개하다’의 절과 항에서 다루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둘째, 손병희가 1900년대 초 문명사회를 시찰하러 일본에 간 것을 ‘도피’(비상교육) 혹은 ‘망명’(천재교육)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외국의 문물을 시찰하기 위해서 단지 밖으로 나갔다는 의미의 ‘외유’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좋을 듯하다. 셋째, 천재교육의 『고등학교 한국사』 179쪽의 “‘1906년’에 동학을 천도교로 개편하였다”라는 내용 중 ‘1906년’은 ‘1905년’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넷째, 천재교육의 『고등학교 한국사』 228쪽의 ‘천도교청년회’는 ‘천도교청년동맹’으로, 법문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278쪽에 실린 ‘한순희’는 ‘한순회’로 고쳐야 할 것이다. 다섯째, 법문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278쪽의 캡션의 ‘천도교의 단천 연맹 창립 기념 촬영(1928)’이란 설명은 천도교에서 모임을 가진 ‘단천청년동맹’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미래엔 컬처그룹의 『고등학교 한국사』 234쪽의 “고종 황제가 서거하자 일제가 독살했다는 소문이 퍼져 국민들이 크게 분노하였다. 이에 독자적으로 독립운동을 준비하던 천도교계, 기독교계와 학생들이 합세했으며”라는 표현은, 3·1운동을 주도한 천도교를 단지 고종의 독살에 항거하는 국민들에 합세한 집단으로 격하하는 것이므로, 서술의 방식을 수정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몇 마디만 덧붙인다면, 천도교의 역할이 크고, 활동이 많았음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는 천도교 구파의 신간회 활동, 1925년 천도교가 주도하여 설립한 대표적 농민단체인 조선농민사, 천도교에서 발행한 1920년대 대표적인 여성잡지인 『신여성』 등과 천도교와의 관련성을 언급하였으면 한다. 아울러 천도교 관련 화보의 수를 늘리고, 양질의 사진을 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Abstract

This research paper is on the Donghak and Cheondogyo written in texts of Korean History of High School used from 2011. I reviewed closely the description systems and contents about Donghak of Korean History of High School and suggested some problems. And I examined thoroughly the description systems and contents about Cheondogyo and presented several problems in them. In large and middle titles of texts of Korean History of High School, Donghak and Peasant Movement is described not as Donghak Revolution, Donghak and Peasan Revolution, Peasant War, but as Donghak and Peasant Movement. It means that the agent of Donghak and Peasant Movement is donghak and peasant. But in some body texts of the Korean History of High School, only peasant is described as the agent of Donghak and Peasant Movement. This is not correct. The agent of Donghak and Peasant Movement should be rectified as donghak and peasant. Most texts of Korean History of High School described remnants of Donghak and Peasant Movement as being changed into loyal soldiers. But in fact, most of remnants developed pro-Japanese enlightenment movement, Jinbohoe Movement. Texts of Korean History of High School should be modified according to facts. Several contents to describe Choe Je-Woo’s status as Yangban, Choe Je-Woo’s missionary method, and the reason of donghak and peasant army’s second uprising should be altered. And some pictures about Donghak Donghak and Peasant Movement have to be changed to correct ones, and a few captions and explanations about them should be modified. I think that it is very suitable to change the description system, where children movement and women movement of 1920s were treated in the Ⅶ chapter of Korean History of High School to cover from 1930s to 1940s. And some errors about Han Soon-Hoe’s name, the foundation year of Cheondogyo, the caption of Cheondogyo Dancheon Association, and the description about the role of Cheondogyo in 3·1 Movement should be modif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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