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平黙의 『闢邪辨證記疑』에 나타난 斥邪思想에 對하여
On the Thought of Anti-heterodoxy Revealed in “Questions on the Criticisms about Anti-heterodoxy Ariticles(闢邪辨證記疑)” of Kim Pyung-m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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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김평묵의 斥邪論은 서양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그 본질을 알고자 함이 主가 되지 못하고, 철저하게 성리학적 유교의 華夷라는 이분법적 논리의 中華意識에 매몰되어 서양 것에서는 하나도 배울 것이 없다는 일관된 입장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衛正闢邪, 內修外攘이 天理에 해당한다고 보고 오직 천리를 지키는 것만이 성인, 군자들이 할 일이었으므로 그 이외의 모든 諸家의 학문들은 전혀 쓸모가 없다고 보았다. 그의 이러한 서양학문에 대한 극단적인 폐쇄성과 더 나아가 이후의 강력한 정치적 실천성은 당시 조선을 둘러싼 국내외적 정치, 경제 상황을 배경으로 나온 것이었다. 19세기 초 조선에서는 대내적으로 양반 벌열정치의 폐단이 만연하였고 서양의 異樣船艦이 江海의 沿岸에 왕래하며 물자가 교류되고 서양인들이 들어와 천주교도들이 크게 확산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서구열강의 군사적 침략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대내·외적 상황 속에서 朝野에 위기의식이 높아져 가고 있던 때, 이항로, 김평묵의 노론 산림계는 자신들의 정치적 생존 노선을 찾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극단적이라고 표현할 만한 움직임으로 나온 것으로 생각한다. 거기에는 물론 정치적 주도권을 잡아 가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Abstract
Arguments on anti-heterodoxy of Kim Pyung-mook was based on the dichotomous logical structure of Sino-barbarian theory, the Neo-confucian culturalism. His thought was deeply rooted in the cultural supremacy that Chosun, Korea inherited uniquely the cultural orthodoxy of Ming, China. Therefore, he insistently asserted that neither Catholicism nor scientific technologies including astronomy and military weapons introduced from the West were worthy of embracing. He thought that ‘defending orthodoxy and rejecting heterodoxy(衛正斥邪)’and ‘stabilizing the government and strengthening the national defense(內修外攘)’amounted to the natural principle to have to be kept by saints and virtuous gentlemen, and so that all the other fields of study except Neo-confucianism must not be useful at all. His extremly exclusive attitude to the Western studies and henceforth the politically strong power of execution were originated in the internal and external circumstances surrounding Chosun at that time. Early 19th century, Chosun was pervaded by harm effects of restricted ruling clans, and western warships and merchant ships appeared frequently at rivers and coasts of Chosun. As a result, western merc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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