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전후기 인천 성냥제조업의 변화
Changes in Incheon Match Industry Before and After Liberation From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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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성냥은 이제 급속히 사라져가는 발화도구의 하나로서 박물관에 진열되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가동되는 성냥공장이 한 곳도 없다. 마지막 성냥공장으로 알려진 의성 성광성냥공업사마저도 2013년 말에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학술적 차원에서 우리나라 성냥제조업 전반을 기록하려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2012년 1월부터 7월까지 총 7회 의성 성광성냥공업사를 조사하여 발간한 보고서가 유일하다. 이 보고서는 생산설비를 자동화기계로 교체한 1970년대, 우리나라 성냥제조업의 후반기에 해당되는 성냥제조공정과 성냥공장노동자의 삶을 담아낸 귀중한 자료이다. 따라서 필자는 본고에서 우리나라 성냥제조업의 전반기 내용을 살펴보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해방이전 조선과 일본 성냥제조업계의 대립과 담합, 해방이후 인천 성냥제조업계의 재도약, 인천 대한성냥공장(1948∼1968)의 각 공정별 작업내용 등으로 나눠서 해방 전후기 인천 성냥제조업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일제 강점기 성냥제조업에 대한 내용은 당시 신문기사를 주로 활용하였다. 그 내용도 일제가 일본인을 위한 성냥생상독점체제를 확립한 상태에서 성냥을 매개로 한 근대화 열풍과 경제적 수탈이란 이중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식민정책을 살핌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해방이후의 내용은 해방과 한국전쟁이 낳은 자료부족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당시 신문기사와 필자가 2003년 11월 27일부터 12월 28일까지 5회에 걸쳐서 확보한 인천 대한성냥공업사 기술자들의 구술증언을 참고하였다.
Abstract
The match has been a survival of a bygone era like a disappearing ignition tool seen at the museum. Now there are no working match factories. Nevertheless, there is not any interest in history of match industry at all in an academic field. The research about Uiseong SeongGyang match manufacturing company conducted by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in 2012 is currently the only research available. This research has valuable data that explain Korea’s match industry with automated systems in the late 1970s. For this reason,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early and middle stages of the Korean match industry. In particular, the confrontation of Choseon and Japan, conferences in the match industry before 1945, the actual state of match factory after 1945, match manufacturing process of Daehan match manufacturing company(1948∼1968) divided Changes in Incheon Match Industry before and after liberation from Japanese. In order to state the case of the match industry before 1945, this study mainly focused on the period of Japan’s colonial rule. Japan abused the match as a tool of Choseon’s modernization and economical depredation, before and after 1932 when The Match Industry Control Act was enforced in Japan. An interview method was adapted to describe the reality in 1948 to 1968. The interview took place on 5 separate occasions from Nov. 27th to Dec. 28th in 2003 with the subjects consisting of skilled workers from Incheon Daehan match manufacturing company. It is hoped that this study will be of some help to recognize the forgotten Korean match industry and the worker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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