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濟 ‘定林寺’의 創建代
The Establishment Year of ‘Jeongnimsa' Temple in Bu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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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에서는 부여 정림사지로 추정되는 백제‘정림사’의 창건 연대를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살펴보았다. 즉, 본격적인 대지 조성은 왕궁터로 추정되는 관북리 일대와 연동되어 있는데, 그 시기는 6세기 늦은 단계로 추정된다. 그리고사찰 건립을 위한 대지 조성 이전에 사용된 소형 노 등과 그와 관련하여, 구지표에서 출토된 토기 등을 참고할 때 사비 천도 후일정 기간 공방이 운영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방은 정림사지 북쪽에 인접한 관북리유적에서 본격적인 대지조성과함께 이루어진 기와기단건물의 조영 이전에 운영된 것이 확인되었다. 대지 조성토에 혼입된 토기, 기와, 중국자기를 통해서도정림사의 조영 연대가 사비 천도 직후까지 올라가기는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 점은 석탑 이전에 목탑이 존재할 가능성이높으며 그 구조는 지하기초부가 없는 높은 지상기단일 가능성과 연계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정림사지 가람배치는 동·서 건물과 강당 좌우의 건물이 하나로 통합되어 강당지 북편 기단보다 북쪽으로 좀 더 돌출되어 대규모 승방으로 통합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익산 미륵사지와 유사하여 정림사지가 능산리사지나 왕흥사지보다 늦게 축조되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강당과 동·서 건물의 배치 관계 등으로 살펴본 이러한 견해는 그동안 정림사지의 창건 연대를 사비 천도 전후로 보아 온 것과 배치된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볼때, 정림사는 사비 천도 전후가 아니라 도시조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6세기 후엽 이후에 창건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Abstract
This paper investigated the construction year of 'Jeongnimsa(定林寺)temple in Buyeo(扶餘) through the recent archaeological records. First, the composition of land for the construction of temple was linked with Gwanbukri(官里)sites which is estimated as palace. The composition of land for the palace was formed at late 6th century. Second, the several furnace sites was discovered under the foundation soil layers for the construction of temple. Reference to the pottery excavated from the previous surface indicates that the workshops having been operated a period of time after the transfer of the capital to Sabi(泗). These workshops having been operated before the construction of roof-tile buildings which were followed by the large-scale composition of land for the palace at Gwanbukri sites adjacent to the north of 'Jeongnimsa. The pottery, roof-tiles and chinese porcelain which were included in the earth laid on the ground for the construction of temple also indicates that the construction year of temple do not go up to shortly after the transfer of the capital to Sabi. This is related with that wooden pagoda would have been present before stone pagoda and the foundation of the wooden pagoda would have soared into the ground. Last, the building layout of temple is familiar to Iksan(益山)Mireuksa(彌寺址) temple site than the temples of Buyeo such as Wangheungsa(王興寺址) temple site. This imply that Jeongnimsa temple was not constructed shortly after the transfer of the capital to Sabi like the opinion of the existing. Jeongnimsa temple was probably constructed at late 6th century when composition of the Sabi city was actively m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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