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계가야관료’를 매개로 한 안라국과 왜
‘Gaya-Officials from Wa’(倭係加耶官僚) as an Intermediary Between Allaguk(安羅國) and Wa(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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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왜계가야관료’와 ‘왜계백제관료’의 등장시기 및 활동시기는 계체·흠명대이다. 이들이 등장할 무렵은 백제·신라의 가야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한반도 남부의 정세는 여러 면에서 변화를 보이게 된다. 이와 같은 한반도 남부의 정세 변화로 인하여 ‘왜계관료’가 한반도에 파견되었던 것이다. ‘왜계관료’는 야마토 정권으로부터 파견되었지만, 가야 혹은 백제 지역에 체류하면서 주로 외교적 활동을 전개한다. ‘왜계가야관료’는 신라의 남부가야제국의 진출에 따른 독자성 확보를 위해 안라국의 친신라 정책에 적극 참여하였다. ‘왜계백제관료’는 주로 야마토 정권으로 원군을 요청하거나 ‘왜계가야관료’의 본처 송환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왜계백제관료’에 의한 원군 요청은 실질적으로 실행되었다고 볼 수 없지만, ‘왜계가야관료’의 본처 송환 요구 하는 등 ‘왜계가야관료’의 친신라 활동을 저지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이 ‘왜계가야관료’와 ‘왜계백제관료’는 동일한 시기에 활동하였으며, 이들은 주로 안라국과 관련된 문제에 관여한다. 따라서 이들을 ‘왜계관료’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왜계관료’의 경우 활동 지역을 기준으로 ‘왜계가야관료’와 ‘왜계백제관료’로 분류하였는데, ‘왜계가야관료’는 주로 530년 이후에 안라국에 파견되어 활동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해당하는 인물은 근강모야신·이나사·마도·인지미·허세신·길비신·적신·하내직이다. ‘왜계가야관료’는 안라국에서 활동하였다. 안라국은 자국의 독자성 확보를 위해 ‘안라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때 신라와 백제뿐 아니라 왜까지도 끌어들이면서 효과적으로 백제와 신라의 공격에 대응하고자 하였으며, ‘안라회의’ 개최 이후부터 안라국은 친신라 정책을 본격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자국의 독자성 확보에 힘썼던 것이다. 당시 안라국에서 활동한 ‘왜계가야관료’도 안라국의 친신라 외교정책을 따르게 되었다. ‘왜계가야관료’의 활동 양상은 우선 이들이 ‘안라회의’와 ‘임나복건회의’와 같은 국제회의에 참석하였는데, 이들이 이러한 회의에서 어떠한 활동을 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료가 없다. 다만 ‘안라회의’ 이후 안라국은 친신라 외교정책을 전개한다는 것과 백제는 임나복건을 명분으로 개최한 ‘임나복건회의’에서 안라국의 친신라 외교를 저지하고자 한 것으로 볼 때, ‘왜계가야관료’는 친신라 외교 활동을 전개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왜계가야관료’가 백제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거나 본처로의 송환을 요구받는 것을 관련 사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백제가 ‘왜계가야관료’의 친신라 외교 활동을 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할 수 있다.
Abstract
It is worthy of notice that ‘Officials from Wa(倭係官僚)’ showed many common facets such as an appearance time and background of ‘Imnailbonbu(任那日本府)’ and ‘Baekje-officials from Wa(倭係百濟官僚)’ and their diplomatic activities about Gaya regions, etc. As for ‘Officials from Wa’, they is devided into ‘Gaya-officials from Wa’ and ‘Baekje-officials from Wa’ according to their activity areas. The former had been sened out to Allaguk since 530 A.D. Geunkangmoyashin(近江毛野臣), Inasa(移那斯), Mado(麻都), Injimi(印支彌), Heoseshin(許勢臣), Kilbishin(吉備臣), Jeokshin(的臣), and Hanaejik(河內直) were corresponded to this position. ‘Gaya-officials from Wa’ had acted at Allaguk. Allaguk wished to react effectively on attacks form Baekje and Silla by attracting even Wa when it held ‘Alla conference(安羅會議)’. Since then, it had endeavored to attain its independency by full-scale deployments of pro-Silla foreign policy. Under these circumstances, ‘Gaya-officials from Wa’ at Allaguk became gone with its policies. One of main activities of ‘Gaya-officials from Wa’ was the attendance at international meetings such as ‘Alla conference’ and ‘Meeting for reconstruction of Imna(任那復建會議)’, but none of evidences that shows their activities at those meetings has been survived. Only the facts which Allaguk had developed pro-Silla foreign policies since ‘Alla conference’ and Beakje sought to block Allaguk's diplomacy at ‘Meeting for reconstruction of Imna’, shows that they deployed the diplomatic activity for Silla. Also, other related sources show that Baekje citicized them and demanded sending them back home. These facts demonstrate that Baekje attempted to obstruct pro-Silla diplomatic activities of ‘Gaya-officials from 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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