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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년 신묘약조 성립에 대한 고찰

Consideration on the Establishmen of the Shinmyo Agreement in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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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 연구에서는 조・일 양국이 교간에 대한 처벌규정[신묘약조]을 합의하는 일련의 과정을 추적하여 조선의 대일외교에 대한 자세와 더불어 외교역량을 확인하고자 한다. 신묘약조에서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교간은 양국의 사회・문화적 차이로 인해 외교문제로 비화된 사안이었다. 조선은 국내에서 발생하는 교간뿐만 아니라 왜관에서 발생하는 교간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처벌하였다. 한편 일본에서는 이국 남녀의 접촉과 관계가 허락되는 분위기로, 동래부의 항의를 받을 때마다 왜관의 관수는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를 설명하며 항변하였다. 이와 같은 양국의 인식차가 있음에도 그 간극을 좁혀 약조 체결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1711년 약조 체결에 직접적 계기가 되었던 1707년 교간사건을 해결하려는 조선의 의지는 매우 강하였다. 1708년 문위행을 통해 교간왜 동률 처벌[사형]을 약조화하는데 실패한 조선은 이후 다양한 외교 전략을 구사하였다. 특히 조선은 대마도에서 요청한 彦千代圖書와 교간왜 처벌문제를 함께 검토하는 한편 대마도의 외교적 결례를 지적하는 서계를 작성하여 대마도를 압박하였다. 이에 대마도는 그동안의 교간에 대한 소극적인 입장에서 교간왜를 체포하고 나아가 약조를 체결하여 동률로 처리하겠다는 태도로 전환하였다. 이러한 대마도의 입장 변화가 곧바로 약조 체결로 이어지지 않았으나, 조선이 교간왜 처벌에 대한 대마도의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긍정적 역할을 하였다. 한편 조선이 교간사건을 처리, 약조로 체결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변화는 대마도가 조선의 대일정책이 크게 전환되었음을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과거에 대마도가 분별력없이 강제로 밀어붙이면 해결된다는 식의 외교방식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Abstract

The diplomatic capabilities of Joseon as well as the diplomatic attitude of Joseon toward Japan were scrutinized by tracing the series of processes to conclude the Shinmyo Agreement between Joseon and Japan to punish prostitution. Prostitution, a main topic of the Shinmyo Agreement, was a diplomatically emerging issue due to the social and cultural differences between the two countries. Joseon rigorously punished prostitution, not only domestically but also in Waegwan. However, when Dongraebu protested against prostitution, the head of Waegwan appealed and explained that contact and prostitution between foreign men and women were generously allowed in Japan. As there was a cultural gap between the two countries, it was meaningful that the gap was reduced to reach the Shinmyo Agreement. Joseon had a strong will to resolve the prostitution incident in 1707, which directly led to the Shinmyo Agreement. Joseon unfolded various diplomatic strategies after failing to reach an agreement to punish the prostituted Japanese with the death penalty through Munwihaeng in 1708. Especially, Joseon pressed Tsushima by writing diplomatic documents to point out Tsushima’s diplomatic indiscretion, reviewing the issue of punishment for the prostituted Japanese, and raising arguments on the issue of the Uncheondae Doseo that was requested by Tsushima. Accordingly, Tshushima changed its attitude from a passive stance against prostitution to an attitude of arresting prostituted Japanese and further developed an agreement to treat the prostitution issue same as the Joseon. Although this change of attitude did not immediately lead to the signing of an agreement, it was important progress to induce Tshushima’s response to Joseon’s punishment of the prostituted Japanese. Meanwhile, the changes of Joseon to make an agreement for handling the prostitution problem served as an opportunity for Tsushima to realize that Joseon’s policy against Japan had been significantly changed. Therefore, Tsushima realized that the previous diplomatic approach - forcefully pushing without discernment - was not effective, so they needed to find a new diplomatic approach against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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