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사로 본 1910년대 ‘개인’ 개념의 수용 양상 — 유명론적 전환과 개체로서 ‘개인’ 인식
The Conceptual History of Individual and Natural Rights in 1910s Korea: A Nominalistic 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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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10년대는 한일합병과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주자학적 세계로부터일본을 통한 본격적인 서구지식의 유입이라는 일종의 지적 전환기였다. 1900년대-1910년대 지식인들은 ‘理’의 보편적 존재에 대한 인식 자체가 논쟁이나 비판을 겪지 않은 상황에서 단독으로 존립 가능한, 자연과 분리된 근본적인 인식 단위인 개체로서 ‘개인’이라는 관념을 기의(記意)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웠다. 여기에는 개체에 선행하는, 人道로현현되어야 할 ‘天道’라는 보편적 실재의 인식적 자리가 늘 전제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유교가 대대적인 비판에 직면했던 1905년에서1910년 사이에 4대 종교운동이 일어난 것도 이와 관련된다. 1910년대 지식인들의 ‘개인’ 개념은 한말 국수론(國粹論)과 연관된 민족유기체(民族有機體) 내에서 ‘개인’ 관념이거나, 적극적으로 천부인권설(天賦人權說)과 사회계약설을 부인하는 ‘개인’ 관념이 두드러졌다. 여기에는 오륜적 친족-국가 관계망의 성리학적 사회유기체적 세계관을 해체하고 분자적 ‘개인’이라는 개체적 인식에 기초한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했다기보다는 기존의 사회유기체적 인식에 개인 개념을 결합한 형태가 주류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서구의 유명론(唯名論)적 인식이사회진화론의 개체적 전제를 통해 유입된 경우도 있었는데, 이를 명시적으로 표현한 것은 소수였지만 개체적 인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편 인격적인 천(天) 관념보다 법칙적인 천(天) 관념을 유지했던 경우 1920년 이후에도 자유와 평등을 누릴 가치가 있는 인간의지위는 노력을 통해 획득되어야하는 존재라는 관념을 갖고 있었다.
Abstract
While the intellectual group Hakchikang has been recognized as a leading liberal force in previous studies, this article shows that some concepts of the ‘individual’ in 1910s’ Hakchikang lies within the ethnic organism associated with the theory of ‘Nationalism’(國粹論). Unlike the intellectuals of the late Joseon Dynasty, such as Yu Gil-joon and Park Young-hyo, their notion of the ‘individual’ prominently denied ‘Natural Right’ and ‘Du Contra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the’. Instead of dismantling the stereotypic social organic worldview of the Neo-Confucianism kinship-state network and forming a new world view based on the individual perception of the molecular ‘individual’, it shows that the combination of the existing concept of social organism and the concept of the individual was mainstream. Meanwhile there was a case where the western recognition of nominalism was introduced through the individual premise of social evolution theory. Though only a small number expressed it explicitly, it also became an occasion for the spread of individual awar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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