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전환기 ‘개벽’의 불온성과 개념화 — 동학⋅천도교를 중심으로
The Subversiveness and Conceptualization of ‘Gaebyeok’ in the Modern Transition Period: Focusing on Donghak and Cheondog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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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19~20세기 초 동학·천도교에서 사용한 ‘개벽’의 용례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동아시아에서 ‘개벽’의 전통적 의미는‘세상이 열리다’였다. 19세기 중엽 동학교조 최제우는 ‘다시개벽’을제시했는데, 여기에는 ‘세상이 뒤집히다’라는 의미가 들어감으로써전통적 의미를 혁신하였다. 그러나 이런 용례는 그것이 가진 불온성으로 인해 많이 사용되지 못했다. ‘다시개벽’을 잇는 논의는 1910년대 천도교단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후천개벽’은 ‘다시개벽’을 계승하되 ‘선천-후천’의 상수학적 사유를 포괄하여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반면, 이 시기의 논의는 종교교단 차원에 국한되었다. 이와 달리 1920년대에 ‘개벽’은 사회적으로널리 알려졌고 다양하게 의미부여 되었으며, 점진적 발전론 속에서논의되었다. 이런 경향을 ‘개념화’라 부를 수 있으나, 그러한 ‘개념화’는 제한적 범위에 그쳤다. ‘개벽’의 제한적 개념화는 근대적 의미화에 대한 거부로 볼 수 있다. 「검결」의 불온성을 강조하거나, 사회진화론 및 단선적 발전론을상대화하는 사례가 여기에 해당했다. 물론 ‘개벽’은 ‘역사’나 ‘혁명’ 의 경쟁상대가 되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도교 인사들이 ‘개벽’의 사용을 고집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태도는 얼핏 보면 진보적 시간인식의 대세 속에서 간헐적 사례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그것은, 신종교를 비롯한 많은 한국인에게 ‘후천개벽’이 확산되고 지속된 사실을 드러내는 단초에 해당한다.
Abstract
I have systematically organized the usage of ‘gaebyeok’ used in Donghak and Chondogyo in the early 19th and early 20th centuries. The traditional meaning of ‘gaebyeok’ in East Asia was ‘opening the world’. In the middle of the 19th century, Choi Je-woo, a founder of Donghak, proposed ‘Dashi (New) Gaebyeok’, which has the meaning of ‘the world is turned upside down’, an innovation of the traditional meaning. However, this usage was not widely used due to its subversiveness. The discussion on the succession of ‘Dashi Gaebyeok’ appeared centered on the Chondo denomination in the 1910s. ‘Hucheon (Later Day’s) Gaebyeok’ succeeded ‘Dashi Gaebyeok’, but its meaning was expanded to include the Hsiang-shu-hsueh (象數學)-thinking of ‘Seoncheon-Hucheon (Former-Later)’. But the discussion of this period was limited to the religious denomination level. On the other hand, in the 1920s, ‘Gaebyeok’ was widely known in society, given various meanings, and discussed in the theory of gradual development. This trend could be called ‘conceptualization’, but such ‘conceptualization’ was limited in scope. The limited conceptualization of ‘Gaebyeok’ can be seen as a rejection of modern signification. This was the case of emphasizing the subversiveness of “Geomgyeol” or relativizing the theory of social evolution and the unilinear development theory. Of course, ‘Gaebyeok’ did not become a competitor to ‘history’ or ‘revolution’. Nevertheless, it is noteworthy that Chondogyo figures insisted on using ‘Gaebyeok’. At first glance, this attitude may appear to be an intermittent case in the trend of progressive time perception. However, this is a starting point for revealing the fact that the ‘Hucheon Gaebyeok’ has spread and continued to many Koreans, including new relig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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