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난장의 개념과 역사적 실체
The concept and historical substance of Nanjang in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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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난장(亂場)은 장시의 신설이나 기존 장시의 진흥을 위해 세우는 특별장을 말한다. 이때 특별장이란 장시에 물건을 사고파는 것 외에 제의, 놀이, 공연, 오락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큰 장시를 뜻한다. 다만, 나중에는 장날을 변경할 때에도 난장을 세웠다. 난장은 18세기 이후 장시, 특히 오일장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실제로 문헌상 난장의 사례가 처음 출현한 것은 19세기말이었다. 공인(貢人)의 일기 자료인 『하재일기』와 함께 『독립신문』에서 처음 확인된다. 종래 관찬사료나 양반 사족의 문집과 달리 개항 이후 중인층의 일기나 신문에 민간의 일상이 기록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난장은 장굿, 별신제, 별시 등 다양한 용어로 불렀다. 난장은 보통 3~4일에서 7일간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한 달이나 두 달씩 벌이기도 하였다. 난장은 사람을 모으기 위해 굿이나 씨름대회를 벌이거나 탈춤, 줄타기, 땅재주 등과 같은 재인과 광대를 동원하여 각종 공연을 베풀거나 도박 및 여흥을 베풀었다. 난장은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지만, 일제의 시장통제책으로 인해 크게 제한을 받았던 것 같다. 난장이라는 용례가 한 두 사례 밖에 보이지 않은 까닭은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근대화된 용어인 ‘開市기념’ ‘週年기념’ 등의 사례가 자주 쓰였다. 난장은 해방 이후 다시 크게 활성화되었다. 하지만 철도와 교통, 그리고 시장이 상설화되면서 난장은 더 이상을 열리지 못하였다. 그 결과 1960년 이후 난장의 사례는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뒤 난장은 장시의 난장이 아닌 축제의 의미를 갖는 난장이 보편화되었다.
Abstract
Nanjang in Joseon refers to a special chapter built for the establishment of a new Jangsi or the promotion of an existing Jangsi. However, in the later generations, even when the market day changed, they tried to inform the neighborhood by setting up a banquet. It is understood that these Nanjangs were form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when Jangsi, especially five-day markets, expanded nationwide. It was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hat the case of Nanjang as a long poem first appeared. Dwarfs appeared in the diaries of the middle class, and newspapers began to appear. It was a phenomenon that appeared when the daily life of civilians was recorded in the records or newspapers of the middle class, not the records of the noble class. Nanjang was called by various terms such as Janggut, Byeolsinje, and Byeolsi. The banquet was usually held for 3 to 4 to 7 days, but depending on the region, it was held for one or two months. In order to gather people, the dwarfs held rituals, wrestling contests, or mobilized play troupes such as talchum to engage in various entertainment, gambling, and entertainment. This kind of banquet was changed into terms such as ‘Commemoration of the opening city’ and ‘Memorial of the new year’, which were modernized concept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Nanjiang, which was restricted by the market policy of Japanese imperialism, was greatly revitalized after liberation. However, with railways, transportation, and markets becoming permanent, Nanjiang was no longer held. As a result, no examples of "Nanjang" have been found since 1960. After all, Nanjang in Korean history has shown a great change from "Nanjang in the past" to "Nanjang in Jangsi" and then "Festival Nan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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