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후반~20세기전반 기장지역의 시장권
Market Network of Kijang Area in the Late 18th-Early 20th Century
0
조회
0
다운로드
14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조선후기 지방상업은 장시와 포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8세기 후반에는 전국에 1000여개나 분포할 정도로 장시는 일상적인 交易機構로 정착하였다. 장시는 한달에 6차례 열리는 5일장으로 보편화하였다. 5일마다 열리는 장시는 한 군현 내에 5개 정도 개설되었다. 5일장 체계는 군현의 규모에 따라 달랐다. 규모가 작은 기장지역에는 18~19세기에 장시가 邑內場과佐村場2개밖에 없었다. 포구는‘九浦’가 관용어로 쓰일 정도로 발달하였다. 각 군현의 장시는 기본적으로 읍내장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1920~30년대 자료를 보면, 좌촌장이 읍내장보다는 거래 규모가 훨씬 컸다. 두 장시의 규모의 차이가 18~19세기에도 동일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기장지역은 읍내장이 지역의 중심 시장으로 발전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읍내장은 인근 大場인 동래 읍내장의 유통권 내에 흡수되면서 약화된 반면, 좌촌장은 주변 장시와 유통망을 형성하면서 발전한 때문은 아닌가라고 생각된다. 18~19세기 기장지역의 시장권은‘九浦’포구와 두 장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기장지역의 시장권은 동래, 울산, 양산 등 주변 지역과 네트워크를 맺으면서 형성되었다.
Abstract
Local commerce in the late Chosun was implemented through market and harbor. In the late 18th century, there were 1,000markets nationally distributed. So market was established as a mechanism of everyday exchange. Market opened six times per month was generalized as a five-day market(五日場). Five markets opened every five days were established within a Prefecture-County(郡縣). The system of a five-day market was different based on the form of a Prefecture-County. There were two markets, town market(邑內場) and Jwachon market(佐村場) in the small area of Kijang(機張) in the 18th-19th century. As contrasted with the two markets, nine harbors usually called as the Gupo(九浦) were well developed. Markets in a Prefecture-County were basically developed from town market as a center. According to the market data published in the 1920s-1930s, the size of exchange in Jwachon market was much bigger than that in town market. It is not clear that the difference of the size of exchange between Jwachon market and town market in the 1920s-1930s was kept in the 18th-19th century. Kijang area was a typical case for town market not to be developed as a central market. It is supposed that town market in Kijang was down-sized because it was absorbed within a market network of the big size of that in Dongnae and that Jwachon market was developed due to the market network with neighboring markets. The market network of Kijang area was consisted of nine harbor(九浦) and two markets in the 18th-19th century. It was also formed through the networking with Dongnae, Ulsan, Yangsan, and so on.
참고문헌 (39)
- "경상도속찬지리지", ~
- "경상도지리지", ~
- "기장군읍지", ~ (1899)
- "기장현읍지", ~ (1832)
- "기장현읍지", ~ (1871)
- "세종실록지리지", ~
- "신증동국여지승람", ~
- "여지도서", ~
- "迂書", ~
- "일성록", ~
- "林園經濟志", ~
- "漂人領來謄錄", ~
- "刑房來報關錄", ~
- 度支部司稅局, "韓國各府郡市場狀況調査書(第1編京畿)" (1909)
- 度支部司稅局, "韓國各府郡市場狀況調査書(第4編慶尙道)" (1909)
- 久納重吉, "東萊案內" (1917), 森友商店
- 越智唯七, "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1917)
- 善生永助, "朝鮮の市場" (1924), 조선총독부
- 경성대한국학연구소, "부산금석문" (2002), 부산광역시
- 고동환, "상업과 도시. in: 새로운 한국사 길잡이(上)" (2008), 지식산업사
- 기장군지편찬위원회, "기장군지(상)" (2001), 기장군지편찬위원회
- 김기혁, "『조선지지자료(1910)』중 부산 지명 자료", 부산지역연구, 10(1) (2004), 부산대 부산지리연구소
- 김기혁, "釜山古地圖" (2008), 부산광역시
- 김대길, "조선후기 장시 연구" (1997), 국학자료원
- 김동철, "17·18세기 대일공무역에서의 공작미 문제", 항도부산, (10) (1993), 부산시사편찬위원회
- 박은숙, "시장의 역사" (2008), 역사비평사
- 박재환, "부산의 장터 찾아가기" (2007), 부산발전연구원 부산학연구센터
- 변광석, "임진왜란 직후 기장지역의 상황과 被虜人 沙器匠", 한국민족문화, (33), pp.39~73 (2009), 한국민족문화연구소
- 부산시사편찬위원회, "부산의 자연마을(제4권)" (2009), 부산시사편찬위원회
- 성현주, "기장지역 도자기의 제작기법과 도자사적 성격", 한국민족문화, (33), pp.75~131 (2009), 한국민족문화연구소
- 윤용출, "조선후기 機張縣의 三政운영", 한국민족문화, 8 (1996),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 이왕무, "1764년 河命祥의 解由文書를 통한 機張縣의 關防연구", 장서각, 4 (2000),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이재극, "남창 5일장 고찰", 울산연구, (4) (2007), 울주문화원
- 이종봉, "조선시대 기장지역의 도자기 생산과 의미", 한국민족문화, (33), pp.3~38 (2009), 한국민족문화연구소
- 이헌창, "지방 상업. in: 조선시대 생활사" (1996), 역사비평사
- 이헌창, "시장교환. in: 조선시대 생활사 2" (2000), 역사비평사
- 한상권, "18세기말~19세기초의 장시발달에 대한 기초연구-경상도지방을 중심으로-", 한국사론, 7 (1981), 서울대 국사학과
- 허영란, "일제시기 장시 연구" (2009), 역사비평사
- 홍희유, "조선상업사" (1989),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