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 末期 倭寇의 침입과 기근에 따른 民生
The effect of Whegoo’s invasion and famine toward the livelihoods of the public in the end of the Kor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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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고려가 쇠퇴해가는 1350년 무렵부터 멸망한 시기인 1392년까지 인구의 동향은 영양섭취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이 기간 동안 고려 사람들은 심각한 영양결핍 상태에 놓여 있었다. 왜구가 1350년부터 끈질기게 침입해왔다. 왜구는 세곡을 운반하는 조운선을 약탈했으며, 수도인 개경 인근에 지속적으로 침입하였다. 특히 공민왕 22년에 왜구는 대규모로 침입해왔다. 왜적은 漢陽府(서울)에 들어와 민가를 태우고 백성을 약탈하여 수 백리가 소란해졌다. 이 영향으로 수도인 개경이 크게 혼란스러웠다. 공민왕의 뒤를 이은 우왕대에는 왜구가 초기의 연해지방에서 나아가, 내륙 깊숙이까지 침입하였다. 그리하여 바닷가로부터 30∼50리 떨어진 지대에서야 사람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자연히 바다 가까운 곳에 있는 비옥한 토지에서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고려시대의 수재와 한재 빈도는 1351년∼1392년 무렵이 다른 시기에 비해 월등히 높다. 특히 기근은 이 시기에 무려 23회가 집중되어 있다. 수재와 한재는 농업생산량을 감소시키며 기근은 사망률을 높인다. 이러한 상황은 이 시기 고려인들의 영양 상태를 악화시켰다. 국가의 구휼기관인 義倉도 소멸되었다. 이와 함께 이 시기에는 왜구의 침략으로 어업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고려인들의 주요한 단백질 섭취원은 생선과 해산물이었다. 어획량의 격감에 따라 고려 말에 사람들은 단백질의 원천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했다. 소금 역시 왜구의 침략과 소금을 생산하는 鹽戶의 도산, 권세가들의 염분 탈점으로 공급이 부족하게 되었다. 소금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나트륨과 염소를 공급하는 음식물이다. 소금부족으로 이 시기 사람들의 건강은 위협받고 있었다. 고려 말기에 왜구의 침입과 가뭄과 기근의 지속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은 사람들의 영양 상태를 악화시켰다. 여기에다 어업의 붕괴와 소금섭취의 부족, 義倉의 소멸은 고려인들을 영양결핍상태로 이끌었다. 이 시기에 민생은 파탄되고 있었다. 이러한 요인들이 고려 말기의 정치적 동요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여 진다.
Abstract
Koryeo had experience political cataclysm from King Choongjung to King Gongyang(1350~1392). Because in that period, Yuan Dynasty was moving away and new Dynasty Joseon was just before setting of the country. In that point, what condition of the livelihood in the end of the Koryeo?To this point, the population of the Koryeo need to be considered. Because when the livelihood had been stable, the population would have been increased. the population is the first element in deciding scale of the society. Songsa refered to the 2.1million in the population of the Koryeo. This document was the only population record about Koryeo. In this respect, Thomas Mckeown's assertion about the Great Britain is noticeable. The expansion of the population was found in England and Wales about 1800. He insisted that the increase of the population was due to increasing of nutrition. From this point, how was the population between 1350 and 1392 in the Koryeo? During the end of the Koryeo, Whegoo(倭寇; Japanese privates) invaded the territory of Koryeo for taking away rice and people. Whegoo's invasion brought the people a considerable damage in the Koryeo. First of all, the people couldn’t help leaving their own place and made the people suffer a severe famine. Clearly, the land for agriculture was devastated. And The long spell of dry weather and famine had continued from 1351 to 1392. Also the government organization, Uichang was disappeared. Uichang was in charge of relief work. Moreover, Whegoo’s frequent invasions made people unable to produce any more marine products and salt. Marine products were main lifeline in the days. Salt was indispensible in the digestion of food as well. The livelihoods of the public in the end of the Koryeo had been collapsed. On the whole, the people during the end of the Koryeo was deficient situation of nutrition. The reduction of nutrition was the main factor in diminution of the people. The Population decline in the Koryeo caused the reduction in the government revenue. In the light of these facts, Koryeo Dynasty suffered a political disturbance between 1350~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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