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우왕대 재이・병란과 천도론의 정치적 의미
Political Significance of Natural Disaster, Disturbances and the Theory of Transfer of the Capital in the Reigning Period of King Wu of the Gorye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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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우왕대 일어난 遷都論의 배경과 전개, 그리고 그 정치적 의미를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우왕대 잦은 천재지변 등 災異 및 병란의 양상과 대책을 정리하였다. 이어서는 우왕대 천도론의 전개를 우왕 8년 9월에서 우왕 9년 2월에까지 이루어진 우왕의 漢陽 친행에 따른 과정과 정치적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결과를 종합하면, 우왕대의 천도론은 고려왕조의 三京 및 三蘇 巡駐라는 풍수도참적 전통을 잇는 것임과 동시에 재해와 병란을 피하고자 하는 피재와 피난 순주라는 특수한 면까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또한 결과적으로 우왕은 이를 통해 왕권을 확인하고 태조의 왕업과 공민왕의 뜻을 잇는 ‘繼志’를 이룬 셈이 되었다. 따라서 우왕대 천도론 과정에서 나온 한양 천도론은 공민왕을 이은 것이었고, 조선 건국 후 定都로까지 연결되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Abstract
This study was intended to reveal the background, development, and political significance of the theory of transfer of the capital.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as follows: The theory of transfer of the capital in the reigning period of King Wu was a continuation of the fengshui-divination tradition of three capital cities(三京) and three newly-built palace sites(三蘇) of the Goryeo Dynasty, while reflecting the special aspects of touring consolation of avoiding disasters and disturbances. As a result, King Wu ascertained the royal authority and came to achieve the will of the predecessors linking King Taejo's royal statesmanship with King Gongmin's will. Therefore, the theory of transfer of the capital to Hanyang, which emerged in the process of the theory of transfer of the capital in the reigning period of King Wu, lasted up to King Gongmin and was even connected to the capital city after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In this respect, its historical significance can be 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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