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京衙前 書吏 가계 연구 -承文院 書吏 馬聖麟(1727~1798) 가계의 사례-
A Study on the GyeongAJeon(京衙前) Seoli(書吏) Lineages in the Late ChoSun(朝鮮) Dynasty -A Case of SungMunWon(承文院) Seoli(書吏) Ma Seong-Lin(馬聖麟, 1727~1798) Lineage
0
조회
0
다운로드
1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고에서는 승문원 서리를 지낸 마성린(1727~1798) 가계의 경아전 서리 가계로서의 기원, 서리직 세전 시기, 족보 편찬, 혼인, 서자에 대한 차별과 적서 공존 양상 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현재까지 경아전 서리 가계의 앞의 현상에 대해 어느 한 가계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탐구한 사례 연구는 없었다. 마성린의 가계는 지방 양반 가계의 庶派라는데, 경아전 서리 가계로서의 기원이 있었다. 마성린의 6대조 마운룡은 전남 곡성에서 세거한 장흥 마씨 양반 가문의 서자였다. 마성린의 가계는 17세기 초에 마운룡이 장흥에서 시흥으로 이주하였고, 이 이후 마운룡이나 그의 아들 마시봉부터 서리직에 진출하기 시작하였으며, 17세기에 서리직을 세전하였다. 18세기에 마성린 가계 구성원들은 조혼을 통하여 주로 같은 경아전 서리끼리 신분 내 혼인을 하는 등 기술직 중인 사회와는 다른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또한 마성린이 서자를 차별하면서도 혈육으로 인정하며 공존하였던 것으로 보아, 대다수의 경아전 서리들은 서자를 차별하는 등 당시 지배층인 양반에 의해 형성된 가부장적 남성 중심 사회에 적응하면서 존재하였다고 생각한다. 경아전 서리들의 사회적인 지위는 기술직 중인에 비해 낮았을 것이라고 유추한다. 왜냐하면 가계 기록의 편찬 및 간행에 있어서 경아전 서리는 기술직 중인에 비해 훨씬 열세에 있었고, 경아전 서리 가계에서 세전한 서리직이 기술직 중인 가계에서 세전한 기술직보다 위계상 낮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마성린 가계 이외의 다른 경아전 가계들에 대한 사례 연구가 진행되어, 이상의 양상들이 경아전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존재하였는가의 여부가 보다 구체적으로 증명되기를 기대한다.
Abstract
This paper studied on the Ma Seong-Lin(馬聖麟, 1727~1798) lineage who was SungMunWon(承文院) Seoli(書吏). Followings are results of the research in this paper:The origin of Ma Seong-Lin's lineage was in a child of a concubine of YangBan(兩班) lineage. Ma Seong-Lin's ancestors began to separate themselves from YangBan lineage and to form Seopa(庶派) in the late 16th century, moved from ChangHeung(長興) into SiHeung(始興) where was nearby HanYang(漢陽) in the early 17th century, started to hand down Seoli posts(書吏職)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in the 17th century. From that time on, it was the custom in that family marriaged the other Seoli families members young. Ma Seong-Lin discriminated against children of a concubines, at the same time coexisted with them. Through this fact we can conjecture that most of GyeongAJeon(京衙前) Seolis adapted themselves to the patriarchal system formed by YangBans who were in the ruler class of those society. It is guessed that the social status of GyeongAJeon Seolis was lower than the that of Techical Post JungIn(技術職 中人). Following is the reason of that. GyeongAJeon Seoli was inferior to techical post JungIn in compilation of ChopBo(族譜) and the prestige of the Seoli posts was lower than techical post in the public office system. Studying more the other GyeongAJeon Seoli families, I expect to prove that above facts researched by this paper were the general aspects in the GyeongAJeon Seoli society or were not.
참고문헌 (40)
- "國朝文科榜目, 서울대 규장각도서관 소장,태학사 영인", ~ (1984)
- "馬氏大宗譜 3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1981)
- 이창현, "姓源錄,고려대 중앙도서관 영인", ~ (1985)
- "姓源錄續編, 개인소장", ~
- "承政院日記,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 ~
- "安和堂私集, 馬聖麟,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 林熒澤, "李朝後期閭巷文學叢書 6책" (1991), 다른 생각
- "長興馬氏大同譜 2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1996)
- "長興馬氏文簡公孫諱羽振公派世譜, 1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1991)
- "長興馬氏世譜, 5권 5책, 장흥 마씨 종친회 소장", ~ (1963)
- "長興馬氏族譜, 2권 2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 "長興馬氏大同譜, 4권 4책, 장흥 마씨 종친회 소장", ~ (1808)
- "長興馬氏大同譜, 4권 4책, 장흥 마씨 종친회 소장", ~ (1840)
- "長興馬氏大同譜, 11권 11책, 장흥 마씨 종친회 소장", ~ (1922)
- "長興馬氏氏派譜, 3권 3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1946)
- "長興馬氏大同譜, 6권 6책, 장흥 마씨 종친회 소장", ~ (1963)
- "長興馬氏縣監公派譜, 1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1989)
- 마상구, "忠顯祠誌" (2000), 낭주인쇄사
- "陜川李氏世譜, 4권 2책, 서울대 규장각도서관 소장", ~ (1864)
- 강명관,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 (1997), 창작과 비평사
- 김두헌, "조선후기 중인 庶流 및 첩에 대한 차별", 朝鮮時代史學報 (2000), 朝鮮時代史學會
- 김두헌, "技術職 中人 身分 硏究", 박사, pp.2001
- 김두헌, "개항이후(1876~1894년)잡과와 주학 입격자 신분", 대동사학, 1 (2002), 대동사학회
- 김두헌, "『寫字廳先生案』과 조선시대 寫字官의 신분", 古文書硏究, 24, pp.237~274 (2004), 한국고문서학회
- 김두헌, "조선후기 기술직 중인 서류의 혼인과 과거합격 및 관직진출", 민속학연구, (14), pp.59~88 (2004), 국립민속박물관
- 김두헌, "差備待令畵員의 신분과 세전 및 혼인", 전북사학, 31(31), pp.43~82 (2007), 전북사학회
- 김두헌, "18~19세기 중인 사회의 적서 차별과 공존― 천녕현씨 현계근 가문의 사례", 국학연구, 1(12), pp.467~500 (2008), 한국국학진흥원
- 김두헌, "19세기 운학 완천 합격자와 그들의 가계", 전북사학, (33), pp.143~183 (2008), 전북사학회
- 김두헌, "19세기 중인의 초혼 연령 및 배우자의 신분 -현탁 가문과 김상순 가문의 사례-", 鄕土서울, (73), pp.145~183 (2009),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 김두헌, "鄭敾의 身分과 仕宦 履歷 -사대부 출신 및 도화서 화원 진출 여부-", 鄕土서울, (74), pp.45~82 (2009),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 김두헌, "『姓源錄』을 통해서 본 서울 중인 가계 연구 - 중인 가계의 유형과 규모 및 정체성 -", 서울학연구, (39), pp.41~77 (2010), 서울학연구소
- 김두헌, "김범우와 그의 가계" (2010), 교회와 역사
- 왕현종, "한말~일제하 京衙前의 관료 진출과 정치적 동향. in: 한국 근대이행기중인연구" (1999), 신서원
- 원재영, "朝鮮後期 京衙前 書吏 硏究-19世紀 호조서리의 사례를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보, (32), pp.227~277 (2005), 조선시대사학회
- 유봉학, "日錄 公私記攷에 나타난 19세기 書吏의 생활상", 奎章閣, 13 (1993)
- 장동표, "18 ·19세기 吏額增加 현상에 관한 연구", 釜大史學, 9 (1985)
- 장동표, "조선후기 ‘民間逋欠’의 전개와 그 성격", 釜大史學, 13 (1989)
- 정옥자, "詩社를 통해 본 朝鮮末期의 中人層. in: 한우근교수정년퇴임기념논총" (1981), 지식산업사
- 조성윤, "조선후기 사회변동과 행정적 중인. in: 한국 근대이행기 중인연구" (1999), 신서원
- 조성윤, "조선후기 서울지역 중인의 성장과 한계", 역사비평, 21(여름) (19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