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기 용산기지 형성 과정에 대한 기초 연구
The Basic Study on Formation Process of Yongsan Garrison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
0
조회
0
다운로드
1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글은 러일전쟁을 전후로 한 시점부터 상주군체제가 완성된 1920년대까지 기존의 선행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일본군 경리부가 남긴 1차 자료를 적극 활용해 용산기지의 공사 진행 과정과 군사 건축조직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아직까지 많은 베일에 가려진 ‘일제시기 용산기지의 형성과정’을 밝히고자 한 기초 연구이다. 일제는 조선을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러일전쟁과 동시에 한국주차군을 서울에 창설하였다. 그리고 러일전쟁의 승리 이후 한국을 군사력으로 강점해 무단 식민지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들의 군사령부를 ‘용산’에 위치시켰다. 나아가 군사령부 예하 경리부 임시건축과 주도 아래 거대한 영구 군사기지인 ‘용산기지’를 조성해 그 무력을 배경으로 무단 식민지배 체제를 구축했다. 용산기지 공사는 크게 1, 2차에 걸쳐 시행되었다. 제1차 기지공사는 러일전쟁 승리 후 한국주차군 경리부 임시건축과 주도 아래 한국에 대한 군사적 강점과 식민지배 체제의 기반 구축을 위해 1906년부터 1913년까지 실시했다. 한편 제1차 기지공사가 끝나고 이어 ‘경성시구개정사업’이 시작되면서 용산기지가 단지 군사기지로서만이 아닌 처음부터 식민지 경성의 형성과 변화과정에 있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일제는 제1차 용산기지 공사(1906~1913)를 일단락한 후 식민 지배의 공고화와 대륙침략의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 1915년 6월 ‘조선 2개 사단 증설’ 설치를 결정하였다. 이어서 앞서 제1차 기지공사를 담당했던 ‘경리부 임시건축과’를 재창설했다. 그리고 1915년부터 1922년까지 제2차 용산기지 공사를 강행하였다. 제2차 공사 때는 상주사단을 편성함으로써 이에 따른 부대 편제의 확대·개편과 함께 주요 군 시설물의 확충을 통해 한반도 내 안정된 전진기지 내지는 후방기지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대륙침략을 향한 전략적 교두보의 완성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제2차 기지공사가 완료된 후인 1920년대 중반 식민지 경성에 조선총독부(정치)-경성부(행정)-조선신궁(종교)-조선군사령부(군사)를 잇는 식민지배의 중심축이 완성된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이처럼 1, 2차 기지공사 과정을 통해 살펴본 용산기지는 무단 식민지배와 대륙 침략을 수행하기 위한 ‘물리적 기반’이자 ‘군사적 본거지’였다
Abstract
This article has analyzed the progress of construction process and military construction team of Yongsan Garrison based on the preceding research analysis and making use of primary sources written by Japanese Army. This basic article is to reveal Formation Process of Yongsan Garris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which is still veiled. The Japanese established Japanese Army Forces in Korea in order to colonize Korea permanantly during the Russo-Japanese War. After winning the war, it annexed Korea by using military force and located its headquaters in Yongsan to create a system of colonial regime. Moreover, they built massive military base led by a temporary architecture division within the commissariat department that is subordinate to Japanese Army Command in Korea. The construction of Yongsan Garrison went through in two phases. The 1st construction was made to annex Korea and to establish infrastructure for colonial regime between 1906 and 1913 led by a temporary architecture division within the commissariat department. Meanwhile, it turned out that Yongsan Garrison is not only a military base but had been partly affecting the change and formation of Seoul from the first beginning as the 1st construction came to an end and the Urban Planning of the Seoul began. After finishing the 1st construction(1906~1913) the Japanese decided to establish 2 divisions in Korea to dominate firmly and achieve the ambition to invade the continent. They reestablished a temporary architecture division within the commissariat department subsequently. Thus they enforced construction of Yongsan Garrison. During the 2nd construction they wanted to build forward base or rear base by expanding and reforming military organization as well as expanding military facilities. Through this set of process, it could make its dream come true achieving strategic bridgehead in Korea aiming at invading continents. In addition, it is noticeable that, in the mid 1920s when the 2nd construction was over, an axis of colonial regime(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Seoul City Hall-Choson shrine-Japanese Army Command in Korea) was completed in Seoul. For such a reason, Yongsan Garrison examined through the 1st and 2nd construction was physically foothold as well as military stronghold for the purpose of setting up a colonial regime and its territorial ambition of land invasion.
참고문헌 (42)
- 朝鮮總督府, "朝鮮總督府施政年譜" (1913)
- 朝鮮駐箚軍經理部, "朝鮮駐箚軍永久兵營官衙及宿舍建築經過槪要" (1914)
- 朝鮮總督府, "朝鮮總督府施政年報" (1916)
- 朝鮮軍經理部, "朝鮮師團營舍建築史" (1923)
- 京城府, "京城都市計劃調査書" (1927)
- 京城府, "京城府史" (1934)
- 京城府, "京城府史" (1936)
- 金正明, "朝鮮駐箚軍歷史" (1967), 巖南堂書店
- 秦郁彦, "日本陸海軍総合事典" (1991), 東京大學出版會
- 한겨레 신문, "창간기획 용산기지 유적의 재발견", ~ (2013)
- 김상규, "전시체제기(1937∼1945) 조선주둔일본군 병사부의 조직과 병력동원 역할", 석사, 한국사학, pp.2011
- 김천수, "1920년대 용산기지 내 주요부대 및 군사 건축물 현황 연구", 향토서울, 85 (2013)
- 김대호, "1910~20년대 조선총독부의 朝鮮神宮 건립과 운영", 한국사론, 50 (2004)
- 김대호, "일제강점 이후 경복궁의 훼철과 '활용'(1910~현재)", 서울학연구, (29), pp.83~132 (2007), 서울학연구소
- 김태중, "을사조약이후 일본군용건축 생산조직에 관한 연구", 연구논문집, 21 (2003), 경남대부설 공업기술연구소
- 마쓰다도시히코, "日本陸軍의 中國大陸侵略政策과 朝鮮-1910-1915年", 한국문화, (31), pp.229~255 (2003),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영희, "일제 침략과 대한제국의 종말" (2012), 역사비평사
- 서인한, "대한제국의 군사제도" (2000), 혜안
- 서울역사박물관, "보광동:서울특별시 뉴타운 민속지" (2008)
- 서울역사박물관, "이태원 공간과 삶" (2010)
- 손정목, "신용산과 나남의 형성과정", 향토서울, 36 (1979),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 손정목, "한국개항기 도시변화과정연구" (1982), 일지사
- 손정목, "한국개항기 도시변화과정연구" (1982), 일지사
- 신주백, "1910년 일제의 조선통치와 조선주둔 일본군", 한국사연구, 109 (2000)
- 신주백, "용산과 일본군 용산기지의 변화(1884~1945)", 서울학연구, (29), pp.189~218 (2007), 서울학연구소
- 신주백, "군대와 성폭력" (2012), 선인
- 유한철, "일제 한국주차군의 한국침략과정과 조직", 한국독립운동사 연구, 6 (1992)
- 이규철, "대한제국기 한성부 도시공간의 재편", 박사, 건축학, pp.2010
- 임종국, "日本軍의 朝鮮侵略史 Ⅰ" (1988), 일월서각
- 임종국, "日本軍의 朝鮮侵略史 Ⅱ" (1989), 일월서각
- 조건, "일제 '한국주차군' 경리부의 활동과 한국민의 대응 (1904~1910)", 석사, 사학, pp.2006
- 조건, "한국근대건축 연구자료 ‘朝鮮師團營舍建築史’ 자료 소개", 건축역사연구, 86 (2013), 한국건축역사학회
- 조명철, "上原 육군대신의 사퇴와 사단증설문제", 史叢(사총), (71), pp.343~368 (2010), 역사연구소
- 한상도, "중국혁명 속의 한국독립운동" (2004), 집문당
- 황보영희, "서울 용산지역의 가로망 변화에 관한 연구", 2004년도 추계학술발표대회, 24 (2004), 대한건축학회
- 藤原彰, "日本軍事史" (1994), 시사일본어사
- "京城市街全圖", ~ (1910)
- "京城府市街疆界圖", ~ (1914)
- "京城 5만분의 1지도", ~ (1915)
- "京城 5만분의 1지도", ~ (1921)
- "龍山市街圖", ~ (1927)
- "師團對抗演習寫眞帖", ~ (1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