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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 중흥산성에 대한 역사고고학적 고찰

the basic characteristics of Jungheung fortress in Samgaksan(三角山 重興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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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이글은 고려시대 삼각산에 축성된 중흥산성에 대하여 관련 문헌을 소개ㆍ분석하고, 이를 최근의 고고학적 성과와 연결하여, 현재까지 연구가 전무한 중흥산성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선 중흥산성은 외성과 내성으로 이루어진 이중성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또 외성의 범위는 현 중성문-기린봉-노적봉-용암봉-석가봉-문수봉-나한봉-나월봉-중취봉-현 중성문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내성은 현재 중흥사 초입의 좌우 능선을 따라 축조하였던 것으로 보았다. 축성은 문헌기록에서 전장이 9,417척(대략 2.8km)으로 기록한 사실로 미루어, 험준한 삼각산의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고갯마루 등과 같이 상대적으로 평탄한 지점만을 대상으로 축성하였던 것으로 추측하였다. 성문은 지금의 중성문에는 서문, 용암문에는 동문, 보국문에는 동남문, 부왕동암문에는 남문이 있었을 가능성을 확인했다. 또 내성에도 석문으로 출입구를 만들었으며, 현 가사당암문이 위치한 고갯마루에도 석문을 설치했던 것을 기록을 통해 확인했다. 중흥산성으로 통하는 고갯길은 5곳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외성 동문(현 용암문)의 도성령, 남동문(현 보국문)의 석가령, 남문(현 부왕동암문)의 환희령 등과, 상운사와 적석사(현 훈련도감 유영지)를 연결하는 적석령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현 가사당암문 자리에 석문을 설치했던 사실로 미루어, 지금의 백화사계곡에서 산성으로 들어오는 고갯길도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 중흥산성의 초축은 문헌기록과 고고유물을 통하여 볼 때, 고려전기에 이미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북한산성의 성벽 아래에서 발견된 중흥산성의 성벽 주변에서 나말여초로 편년되는 선문 계통의 기와편이 다수 확인되고, 『고려사』의 智蔡文 열전의 기록을 통하여 거란의 2차 침입으로 현종이 피난길에 올랐을 때, 중흥산성이 이미 축성되어 있었을 개연성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거란의 1차 침입 이후 고려 왕실의 보장처로 중흥산성이 축조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한편, 문헌기록을 통하여 중흥산성은 한양의 진산인 까닭에 한양산성 혹은 한양성으로 불렸고, 삼각산에 자리했기에 삼각산성으로도 불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쨌든 『高麗史節要』의 한양산성과 『新增東國輿地勝覽』의 한양산성은 중흥산성을 지칭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consider the basic characteristics of Jungheung fortress in Samgaksan(三角山 重興山城). And I choose the approach which links the archaeological data on the historical record. The conclusion is as follows : First, Jungheung fortress was a structure composed of double walls. The wall was built roughly and the gates were made of stone. Secondly, the outline range was a line of the current Jungseongmun(中城門)-Nojeokbong(露積峰)-Yongambong(龍巖峰)-Seokkabong(釋迦峰)-Munsubong(文殊峰)-Nahanbong(羅漢峰)- jungchwibong(甑炊峰)-the current jungseongmun(中城門). And inside wall was located on the way into the current jungheungsa(重興寺). Third, the length is written approximately 2.8km on history records. On the basis of this, we can see that the wall was built according to natural the lay of the land. For example, We make a judgment that the wall was not built on part of a rugged rock. Fourth, there were four gate. there were the main gate(current Jungseongmun), the east gate(current Yongammun), the southeast gate(current Bogungmyun), the south gate(Bogungmyun Buwangdong ammun). Fifth, The first time of construction is judged as the beginning of the Goryeo Dynasty. I assume that the time was a period after the first invasion of the Kitan which took place in 993. This judgment is demonstrated by a A roof tile engraved motif. And I think that the purpose of construction was a refuge for country against enemy inva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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