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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신규식의 실업 활동 양상과 의미

Industrial activities and their meaning of Shin Gyu-sik at the Great Han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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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 연구는 1907년부터 국권피탈 사이 申圭植(1880~1922)의 실업 활동을 추적하고 그 특징을 분석하고자 한다. 을사늑약 이후 지식인들이 느낀 위기감의 깊이만큼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나라를 구하려는 연구와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1906년을 전후로 국내에 연달아 학회들이 세워졌고 단체운동은 전국을 뒤덮었다. 지식인들 역시 하나의 단체에만 집중하기보다 여러 단체에 참가하면서 거대한 그물망처럼 네트워크를 확장해나갔다. 지식인들은 서구에서 유래된 문명 담론을 수용하고 문명의 보편화를 추구하였다. 서양 제작 기술의 수용은 殖産興業을 위해 계몽의 수단으로 인식되었고, 미룰 수 없는 시무가 되었다. 신규식은 한말 서양의 근대분과 학문을 지칭했던 實學, 實業을 배우고 익혀 국권을 수호하자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퇴직 후 육군무관학교 군인 동료들과 함께 실업 활동에 뛰어들었다. 먼저 퇴직금을 가지고 1907년 皇城廣業株式會社를 설립함으로써 자본을 모으고자 하였다. 또한 1908년 『家庭養鷄新編』을 번역하여 범국민적 차원에서 국가의 재정을 늘릴 방안을 제시하였다. 학술적으로는 官立工業傳習所 학생들이 조직한 工業硏究會를 적극적으로 후원하였고, 工業月報社의 사장 겸 편집인으로서 직접 참여하여 1909년부터 잡지 『工業界』를 발간하는 데 힘썼다. 그의 연구회 지지 뒤에는 畿湖興學會 구성원들의 후원이 있었다. 게다가 신규식은 공업연구회의 이론적 연구와 강연・교육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각종 대규모 공업회사를 설립함으로써 나라의 공업 발전을 현실화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그런 목적 위에서 세워진 大韓工業會는 1910년 8월 分院磁器株式會社 설립에까지 참여하였다. 실업 활동과 모임에 함께한 사람들의 유형은 다양했다. 직간접적으로 함께한 군인, 관료, 언론인, 자본가, 공인 등은 대부분 기호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서도 신규식은 단순한 경제 이윤의 목적이 아닌, 구국의 유일한 방편으로 움직인 ‘운동가(activist)’였다. 국권피탈 후 상황은 변했다. 신규식은 회사에 다니다가 망명을 결심하고 1911년 중국 상해로 떠났다. 그리고 나라를 구하기 위한 또 다른 형태의 독립운동이 중국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Abstract

This study aims to track the industrial activities of Shin Gyu-sik(1880- 1922) between 1907 and the Great Han Empire, and analyze its characteristics. Since Japan-Korea Treaty of 1905, research and activities to save the country in various ways have exploded as much as the depth of crisis felt by intellectuals. Around 1906, a series of academic societies were established in Korea, and group movements covered the country. Intellectuals also expanded their networks like a huge net by participating in various organizations rather than focusing on one organization. Intellectuals accepted the civilization theory originated in the West and pursued the universalization of civilization. The acceptance of Western production technology was recognized as a means of enlightenment for saving the country, and it became an inevitable task. Shin Gyu-sik entered Industry and activities with his military colleagues. First, with severance pay, he tried to raise capital by establishing the Hwangseong gwangeop Co. Ltd(皇城廣業株式會社) in 1907. In addition, in 1908, he translated Gajeongyanggyesinpeon (家庭養鷄新編), the book of poultry farming to suggest a plan to increase the national finances at the national level. Academically, he actively sponsored the Industrial Research Association organized by students of the Industrial Training Center and participated as the editor of the technical periodical Agency to publish the industrial magazine(工業界) from 1909. Behind the support of his research group was the support of members of the Gi-ho Education Revival Assembly(畿湖興學會). In addition, Shin Gyu-sik aimed to realize the country's industrial development by establishing various large-scale industrial companies, as well as theoretical research, lectures, and education of the Industrial Research Association. Founded for that purpose, the Daehan Industrial Society(大韓工業會) participated in the establishment of the Bunwon Ceramic Stock Company(汾院磁器株式會社) in August 1910. There were various types of people who participated in Industrial activities and gatherings. Soldiers, bureaucrats, journalists, capitalists, and artisan figures who were directly or indirectly together shared the identity of same region of origin. Among them, Shin Gyu-sik was not just for the purpose of economic profit, but was an "activist" who moved as the only way to save the country. The situation changed after the annexation of Korea and Japan. Shin Gyu-sik decided to seek asylum while working for a company and left for Shanghai, China in 1911. And another form of independence movement to save the country began again in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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