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宣武祠에 대한 인식 변화
Changing Perceptions of Seonmusain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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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선무사는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던 군문 형개를 기리기 위한 생사당으로 만들어졌다. 생사당의 건립 과정에서 조선은 내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명군과의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협조하였다. 그런데 선조대 조선과의 관계가 비교적 긍정적이었던 양호를 선무사에 배향할 때에는 조선 정부가 자발적으로 추진하였던 모습이 확인된다. 이러한 모습은 광해군대까지도 이어졌다. 선무사는 생사당이기에 양호의 화상을 봉안해야 했고, 그의 화상을 구하기 위한 노력이 선조대부터 계속되었으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1610년(광해군 2) 드디어 양호의 화상을 구하여 선무사에 봉안하였으며, 이를 기념하여 양호거사비를 새롭게 건립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양호와의 우호적 관계를 통해 조선의 외교적 운신의 폭을 넓히고자 하였던 실용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선무사에 대한 실용적 인식은 결국 상황 변화에 따라서 선무사 제향이 지속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병자호란과 명청교체의 큰 변화 속에서 선무사는 큰 국가적 관심을 받지 못하게 변화하였다. 숙종대에 이르러 선무사는 국가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장소로 위상이 급격히 강화되었다. 숙종은 강희제의 어필을 하사받으면서 처한 이데올로기적 곤경을 존주대의 이데올로기의 강화를 통해 타개하고자 하였고, 그 과정에서 선무사에 대한 제향이 지속적으로 활용되었다. 이에 따라 선무사는 대보단과 함께 존주대의를 상징하는 장소로 인식되었고, 제향의 정비 또한 이루어졌다. 영조는 존주대의에 입각하여 선무사의 위상을 더욱 강조하였다. 전몰 명군의 위판을 옮겨와서 별도로 봉안하도록 하고, 선조대 만들어진 양호거사비를 옮겨오도록 하여 선무사 시설의 정비가 이루어졌다. 또한 영조는 선무사에서 국왕의 배례를 정식화하면서 존주대의를 상징하는 공간으로서 선무사의 위상을 확고히 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정조대까지도 지속되었다. 그러나 근현대에 역사적 굴곡 속에서 조선후기를 풍미했던 존주대의 이데올로기는 퇴영적 사조로 인식되었으며, 선무사의 위상은 급격히 하락하였고 건물과 위판은 훼철되어, 현재에는 전하지 않는다.
Abstract
Seonmusa was built as a shrine to honor Ming’s Xing jie, who fought in the Imjin War. During the construction of the shrine, Joseon was forced to cooperate despite its reluctance due to its relationship with the Ming army. However, when Ring Hou, whose ancestors had relatively positive relations with Joseon, was placed in the shrine, the Joseon government voluntarily promoted it. This behavior extended to the King Gwanghae. As Seonmusa is a shrine of live men, Ring Hou's image had to be enshrined, Ring Hou's image was finally saved and offered to Seonmusa Temple, and a new monument was built to commemorate this. During the great changes of the Byeongja Horan and the Ming-Qing transition, Seonmusa ceased to receive much national attention. By the time of Sukjong, Seonmusa had rapidly strengthened its status as a symbol of state ideology. King Sukjong sought to resolve the ideological predicament he found himself in under Emperor Kangxi's appeal by reinforcing the ideology of respectability, and in doing so, he continued to utilize incense offerings to Seonmusa. As a result, Seonmusa was recognized as a place that symbolizes respectability along with Daebodan, and the incense was maintained. King Yeongjo further emphasized the status of Seonmusa based on the principle of respect. The facilities of Seonmusa were maintained by moving the plaques of the war dead to be worshipped separately, and the monument to the good health of the ancestors was moved. In addition, Yeongjo formalized the royal courtesy at Seonmusa, solidifying the status of Seonmusa as a space that symbolizes the righteousness of respect. However, in the modern era, the ideology of Jonju(尊周), which flavored the late Joseon Dynasty, was perceived as a retrograde ideology, and the status of Seonmusa declined sharply, and the building and its tablets fell into disrepair and are not preserved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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