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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대 이순신 사적 현창과 후손 탁용의 정치적 함의 -무신란에 따른 이념적 대책-

Renovation of the History and Vestiges Concerning Yi Sun-Shin(李舜臣) and Political Implication of Selecting the Descendant for Employment -Ideological Correspondence to the Musin Rebellion(戊申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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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고는 영조대 아산의 종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순신 사적 정비의 특징을 무신란에 따른 이념적 대책이라는 차원에서 분석한 것이다. 당초 이순신에 대한 사적 정비는 전투지와 연고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영조대에는 이순신의 무덤이 있는 종가에 세워진 현충사를 중심으로 변화하였다. 정부는 무신란 당시 이순신의 후손임을 내세우며 저항하다 순절한 이봉상에 대해 이순신의 죽음과 연동되어 현창하고, 적손에게 거듭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하는 등 정치․사회적인 예우를 명확히 하였다. 이는 무신란 당시 조광조와 정온의 봉사손이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반란이 확대되고 충역의 의리가 도치된 현실의 위기에 대해대를 이어 죽음으로써 국왕에 대한 의리를 다하는 충신의 표상을 정립하고자 한 것이다.

Abstract

In terms of ideological correspondence to the Musin Rebellion, this article analyzes the characteristic of the renovation of the history and vestiges concerning Yi Sun-shin which centred around the main house in Asan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gjo(英祖) and King Jeongjo(正祖). Initially, the renovation of the history and vestiges concerning Yi Sun-Shin centred around battle fields and hometown. However, after the reign of King Yeongjo and King Jeongjo, the projects went along around Hyeonchungsa Shrine(顯忠祠) which was build in the main house, where the grave of Yi Sun-shi is. In those days of the Musin Rebellion, the government complimented Yi Bong-Sang(李鳳祥) who resisted and dead for his chastity by claiming that he was the descendant of Yi Sun-shin, emphasizing linkage between death of the ancestor and descendant. Also the government treated legal posterities respectfully by repeatedly nominating them as Samdo Suguntongjesa(三道水軍統制使) who governs naval forces of Jeolla, Gyeongsang, and Chungchenong provinces. By setting up the symbol of loyal subjects who died for fidelity to the king, it was to overcome the crisis in reality in which the rebellion was expanded and ideology of fidelity got a blow as legitimate legal posterities of Cho Gwang-Jo(趙光祖) and Jeong On(鄭蘊) actively particip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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