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공화국 후반기 자유당-민주당 갈등과 양원제 실현 논쟁
The Liberal-Democrat Conflict and Debate Regarding the Realization of Bicameralism, 1956-1960
0
조회
0
다운로드
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 연구는 제1공화국 후반기 양원제를 둘러싼 자유당과 민주당의 갈등 양상, 제1공화국기 양원제 실현이 최종적으로 좌절된 과정을 고찰했다. 1952년 도입된 양원제는 수년간 실현되지 않았으며, 이러한 헌법과 현실의 괴리가 1956년 이후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자유당이 내각책임제 개헌을 제기하자, 민주당은 개헌을 막기 위해 양원제가 실현되지 않는, 즉 현행 헌법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을 활용했다. 개헌을 포기한 자유당은 또다른 당면 문제인 선거법 개정에 집중했고, 1957년 하반기 야당과의 합의를 통해 민의원·참의원 선거법을 제정했다. 1958년 제4대 총선에서 실질적으로 패배한 자유당은 참의원 선거에서도 자당이 불리할 것을 인식하고 본격적으로 양원제 회의론을 주장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자당의 약진을 확신하고 참의원의 조속한 구성을 주장하며 강력한 대정부·여당 공세를 취했다. 여야가 첨예하게 충돌한 양원제 문제는 결국 자유당이 정치파동을 통해 참의원 선거 법정 기일을 무력화하는 파국적인 방식으로 종결되었다. 이후 양원제 문제는 더 이상 진지하게 논의되지 못했으며, 결국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기까지 양원제는 실현되지 못했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debate between the Liberal Party and the Democratic Party on bicameralism from 1956 to 1960, explaining why the realization of bicameralism failed. Bicameralism was adopted in 1952, but it was not realized. This gap between the constitution and reality became a major issue after the 1956 presidential election. When Liberals proposed a parliamentary amendment, Democrats opposed it and argued for the reinstatement of bicameralism, accusing Liberals of ‘unconstitutional’ neglect of bicameralism. After dropping the amendment, Liberals and Democrats enacted election laws for both the lower and upper houses. But after their defeat in the general election of 1958, Liberals claimed the futility of bicameralism. Democrats, on the other hand, urged the organization of the upper house, convinced of victory in the election. A massive dispute on bicameralism was violently ended, when Liberals used force to neutralize the enforcement deadline of the election law of the upper house. No further debate on bicameralism ensued in any degree of seriousness, and a bicameral system was not realized in ROK until the collapse of the Syngman Rhee regime.
참고문헌 (27)
- "경향신문", ~
- "동아일보", ~
- "부산일보", ~
- "서울신문", ~
- "조선일보", ~
- "국회회의록", ~
- 김명섭, "대한민국 국무회의록 1958" (2018), 국학자료원
- 최연식, "대한민국 국무회의록 1959~60" (2023), 국학자료원
- "RG 59, Central Decimal File, Records of the U.S. Department of Relating to the Internal Affairs of Korea", ~ (1959)
- [URL]
- [URL]
- [URL]
- 강민수, "1948-1953년 이승만의 양원제 도입 시도와 그 귀결", 역사와 경계, 127, pp.183~224 (2023)
- 김영호, "한국의 양원제 경험과 채택의 논점들", 석사, pp.2019
- 김진흠, "1958년 5.2 총선 연구—부정선거를 중심으로", 사림, 44, pp.227~322 (2013)
- 김진흠, "이기붕 체제 자유당의 정당정치 모색과 좌절(1954-1960)", 박사, pp.2020
- 김진흠, "제1공화국 시기 민주당의 내각책임제 개헌 정책과 ‘민주주의 정당’ 위상의 획득",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19(1), pp.89~117 (2020)
- 박찬표, "한국의회정치와 민주주의-비교의회론의 시각" (2002), 오름
- 서복경, "제한적 경쟁의 제도화-1958년 선거법 체제", 선거연구, 3(1), pp.109~138 (2013)
- 서중석, "조봉암과 1950년대" (1999), 역사비평사
- 성낙인, "대한민국헌법사" (2012), 법문사
- 안성호, "양원제 개헌론" (2013), 신광문화사
- 오제연, "1956-1960년 자유당 과두체제의 형성과 운영", 한국사론, 50, pp.405~471 (2004)
- 이혜영, "제1공화국기 자유당과 ‘이승만 이후’ 정치 구상", 박사, pp.2015
- 정상호, "제2공화국의 양원제 연구", 한국정당학회보, 11(3), pp.5~37 (2013)
- 한국사특강편찬위원회, "새로 쓴 한국사특강" (2024),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