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 소장 〈全州地圖〉 연구: 조현명(趙顯命, 1690-1752)의 전주부성 재건 기록
A Study of Map of Jeonju: A Record of Jo Hyeonmyeong (1690-1752)’s Reconstruction of the Jeonjubu For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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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전주지도(全州地圖)〉를 분석한 연구이다. 이 작품은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지도의 특징보다 회화적인 면을 강하게 보여 준다. 이 작품에는 지명, 산봉우리 명칭, 길과 강의 이름, 인접 지역명, 행정구역 경계 등 일반적으로 지도가 제공하는 지리 정보들이 표기되지 않았다. 반면 청록산수화의 색채, 형태가 변형된 전주부성, 성의 내외부를 가득 채운 꽃과 나무, 섬세하게 그려진 인물들이 화면에 표현되었다. 그러므로 필자는 제목과 작품 이미지의 차이에 주목하여 〈전주지도〉의 회화적인 표현 양식과 제작 배경을 고찰하였다. 필자는 〈전주부성〉의 제작 시기를 전주부성이 재건된 1734년부터 전라감영의 정문인 포정루(布政樓)가 창건된 1743년까지로 한정하였다. 이 경우 작품의 제작 배경으로 가장 주목되는 일은 조현명의 전주부성 재건이다. 그 이유는 전주의 도시사(都市史)에서 재건 공사의 의미가 특별하였으며 작품에 조현명(趙顯命, 1690-1752)과 관련된 요소들이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전주부성 재건은 정유재란으로 파괴된 채 방치되어 왔던 전주부성을 약 140년 만에 재건하는 대규모 공사였다. 그 목적은 전주의 방어 기능 향상이었다. 전주는 조선 왕실의 관향(貫鄕)이자 경기전(慶基殿)이 위치한 곳이었으며 무신란(戊申亂, 이인좌의 난) 이후에는 군사적 요충지로 주목받게 되었다. 또한 전주가 함락될 경우 적들이 곧바로 한양(漢陽)으로 북진(北進)할 수 있는 점도 성의 재건에 영향을 끼쳤다. 〈전주지도〉에는 전라도관찰사의 공무와 관련된 건축물, 경기전, 명승지(名勝地)의 누정(樓亭)인 한벽루(寒碧樓) 등 9개의 건물에만 명칭이 표기되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조현명과 관련이 있다. 작품과 조현명의 관계는 다른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조현명은 산성(山城)보다 평지(平地) 읍성(邑城)을 통한 방어를 강조하였다. 작품에서 전주부성은 화면의 중앙을 압도하는 반면 위봉산성(威鳳山城)은 인식이 어려울 만큼 극도로 작게 표현되었다. 또한 가뭄과 재정 고갈이 염려되는 상황에서 추진되었던 전주부성 개축은 조현명 탄핵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영조(英祖, 재위 1724-1776)는 조현명의 편에 서서 성의 완공에 힘을 실어 주었다. 조현명은 임금의 밝은 식견에 감사하며 사대문 중 남문 문루(門樓)의 이름을 명견루(明見樓)라고 지었다. 그는 「명견루상량문(明見樓上樑文)」에서 경기전의 상서로운 분위기를 강조하였는데, 이 또한 〈전주지도〉에서 경기전 위의 서학(瑞鶴) 무리로 표현되었다. 조현명이 공사의 모든 과정을 기록한 『전주부성축성록(全州府城築城錄)』을 남긴 점은 축성 공사의 특별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화면의 중앙을 차지하는 전주부성 표현에 그의 축성록이 충실하게 반영된 점 또한 〈전주지도〉와 조현명의 관계를 뒷받침한다. 〈전주지도〉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성의 안팎에 표현된 민가와 꽃나무이다. 이 표현은 작품의 작가로 추정되어 온 김희성(金喜誠, ?-1763년 이후)의 도원(桃源) 그림을 연상시킨다. 두 작품의 양식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김희성이 〈전주지도〉를 그렸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그리고 조현명이 김희성에게 자신의 정자인 명오정(名吾亭) 그림을 부탁하였던 사실은 〈전주지도〉, 김희성, 조현명 사이의 상호관련성을 알려 준다. 이를 종합하면 〈전주지도〉는 표현 방식, 제작 배경, 화가 등 다양한 부분에서 회화적인 특징을 강하게 보인다. 따라서 〈전주지도〉는 전주의 실경과 함께 조현명의 중요 업적인 전주부성 재건이 표현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Abstract
This paper analyzes Map of Jeonju (National Treasure) and identifies it as a painting. Despite the word 'map' in its title, Map of Jeonju bears the characteristics of a painting. It does not contain geographical information that is typically provided in maps, e.g. names of locations, mountain peaks, roads, rivers, neighboring regions or boundaries of administrative districts. On the contrary, it displays pictorial aspects, such as the coloration of blue and green landscape paintings, a stylized depiction of the Jeonjubu Fortress filled and surrounded by flowers and trees, as well as delicately painted human figures. Therefore, the author examines the painting style and the background of Map of Jeonju while focusing on the discrepancies between the title and the image. In this paper, Map of Jeonju is estimated to have been produced sometime between 1734 (when the Jeonjubu Fortress was reconstructed) and 1743 (when the Pojeong Pavilion was built). The most remarkable event during that period was the reconstruction of the fortress by Jo Hyeonmyeong (1690-1752). This is based on the fact that the reconstruction of the Jeonjubu Fortress was significant for the history of Jeonju, and several elements in Map of Jeonju relate to Jo Hyeonmyeong. 140 years after its collapse during the Second Japanese Invasion (1597-1598), reconstructing the Jeonjubu Fortress was a large-scale project. Jeonju served as an important defense point for Hanyang and regional military bases. In Map of Jeonju, only nine buildings are labelled and they are all related to Jo Hyeonmyeong. Another important point is that Map of Jeonju reflects Jo’s opinion that town fortresses were more effective than mountain fortresses. Accordingly, the Jeonjubu Fortress dominates the center of Map of Jeonju while the Wibong Mountain Fortress is almost too small to be recognized. Because Jo had ordered the reconstruction of the Jeonjubu Fortress despite severe droughts and financial difficulties, people called for his impeachment. King Yeongjo (r. 1724-1776), however, supported Jo and helped him complete the project. With gratitude for the king’s positive judgement, Jo Hyeonmyeong named the southern gate pavilion of the fortress Myeonggyeonru, which means the “Pavilion of Bright Judgement”. In his writings, he emphasized the auspicious atmosphere of the Gyeonggi Hall in which a portrait of the first king of the Joseon dynasty is housed. Likewise, there is a group of auspicious cranes depicted above the Gyeonggi Hall in Map of Jeonju. His “Record of the Reconstruction of the Jeonjubu Fortress” describes the entire process and what the project meant to him. Another important aspect is the houses and flowering trees inside and outside the fortress which are reminiscent of the painting Peach Blossom Spring by Kim Huiseong (?-after 1763). Since the painting styles are very similar, it seems possible that Kim Huiseong painted Map of Jeonju. In addition to that, Jo was a patron of Kim Huiseong and had commissioned a painting of his new pavilion from him. After all, Map of Jeonju connects Jo Hyeonmyeong, the reconstruction of the fortress, and the painter Kim Huiseong with each other. Even though it is called a map, the work can be considered a painting which documents Jo Hyeonmyeong’s major achievement of reconstructing the Jeonjubu For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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