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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France et la premiere etape de sa politique de securite europeenne : De la fin de la seconde guerre mondiale au debut de la cinquieme Republ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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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프랑스는 2차 대전 직후 자국의 안보유지를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구사하게 되는데 그 기저에는 국가 안보의 유지 및 유럽에서 프랑스의 헤게모니 유지와 세계강국으로의 발돋움에 있다. 이를 위해 독일의 부흥방지, 소련의 위협회피, 이 둘을 위한 유럽에서의 공동방위체제 구축, 유럽통합의 추진, 유럽통합군의 창설 등의 정책을 구사하게 된다. 그러나 세계는 미국과 소련의 지배 하에 놓였고 유럽도 이러한 미․소 양대 축을 중심으로 동․서로 분할된다.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의도와는 달리 미국을 중심으로 서유럽이 유럽의 공동방위체제로서 NATO를 축으로 방위동맹을 형성한 뒤 프랑스가 이에 편입되고, 독일은 NATO에 편입된 가운데 주권회복과 재무장을 하게 된다. 자연히 프랑스가 추진한 유럽통합군 건설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점은 프랑스로서는 치욕적인 것이고, 1958년 드골대통령의 복귀는 이러한 환경에 기인한다. 드골은 집권 이후 프랑스의 위대성과 외부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을 확보하는 한편, 강력한 군사력의 유지 등 3개 노선을 중심으로 유럽안보 정책을 구사하게 된다. 드골이 집권한 당시 유럽 패권국으로서 강력한 프랑스의 재건을 꿈꾸며 자신의 정치․외교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한다. 이는 오늘날 현 프랑스 정부의 외교․안보상 정책적 기저를 형성하고 있는 ‘골리즘’(gaullisme)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정치적 사변 (思辨)의 핵은 ‘국가’(nation)와 ‘힘’(puissance)으로 함축된다. 이의 구체적 표출은 프랑스의 과거 ‘위대성’ (grandeur)의 회복과 외부로부터의 정치적 ‘독립’(indépendance) 확보, 자국의 ‘국력’(puissance) 유지로 나타나고 이를 바탕으로 드골은 프랑스를 세계 강대국의 하나로 다시 만들고, 미국과 소련 등 세계 초강대국들로부터 정치․외교적 독립을 유지토록 노력하게 된다. 특히 드골은 유럽 방위에 있어서 유럽인이 중심이 되는 기구설립, 유럽의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유럽 데땅뜨 정책 및 ‘대서양에서 우랄까지’의 거대 유럽의 탄생을 꿈꾸게 된다. 한편으로, 대 미 종속을 탈피하기 위해 반대서양 통합 전략을 외교적으로 구사하게 된다. 이러한 정책 실시의 구체적인 결과로 드골은 66년 NATO 군사기구로 부터의 탈퇴를 결행하여 나토기구 내에서의 미국의 헤게모니 장악에 반대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서유럽동맹(WEU)이 유럽 안보 기구화 될 수 있도록 하였고 유럽공동체(EC)의 강화 정책을 펴서 서유럽의 결속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결국, 프랑스의 초기 정책들은 이후 5공화국 정부의 대외정책에 변형이 되기도 하였지만 지속적으로 반영이 되어 오늘날 유럽의 분단극복과 유럽에서의 ‘유럽인에 의한 유럽’ 건설, ‘유럽통합’에 실질적으로 공헌한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2)

  1. "?France and the Defense of Western Europe"
  2. "?Les deux premi?res lois de programme la FNS et les projets concernant l'arme nucl?aire tactique? in L'Institut Charles de Gaulle"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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