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를 통하여 본 朝鮮과 日本 간의 交隣關係: 국제법사적 시각에서
The Friendly Neighborliness Relations(Kyorin 交隣) between Chosun and Japan expressed in Jeungjeongkyorinji(增正交隣志): From the Historical Perspective of International Law
0
조회
0
다운로드
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조선은 자기의 대외관계 유지와 관련하여 독자적인 입장을 갖고 대중국, 대일본 외교를 수행하여왔다. 조선과 중국 사이에서는 사대,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는 교린이라는 외교의 기본 방침에 따라 대외관계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외교관계의 기본은 사대에 있어서는 성심을 다한다는 것과 교린에 있어서는 신의에 입각한다는 것이었다. 조선과 일본 사이의 대외관계는 조선과 중국간의 대외관계에 비하면 그 비중이나 형식에 있어서의 중요도가 많이 떨어진다. 조선과 일본은 동아시아적인 국제질서 안에서 대등한 주체로서 서로 좋은 이웃으로서의 관계, 즉 오직 교린관계를 유지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조선과 일본 사이의 관계 유지에 있어서 대마도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며, 대마도로 인하여 일본과의 교린관계가 다원적 중층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또한 대마도인을 중심으로 조선에서 유지된 왜관의 역할은 조선과 일본과의 대외관계에 있어서 중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점에서 조선시대 왜관의 법적 성격에 대하여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선과 대마도의 관계는 정치적인 관계 측면 보다는 경제적인 관계 측면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고, 그러한 이유로 조선 전기부터 체결된 약조들은 경제원조 혹은 교역과 관련한 내용으로 채워졌던 것이다. 삼포 등에 개설되었다가 최종적으로 초량에 설치된 왜관도 원래는 교역을 위한 상관으로서의 역할이 주된 존재 의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상업적 목적을 위한 왜인들의 거주와 조선에 파견되는 차왜들이 늘어남에 따라 왜관은 차왜, 즉 일본 혹은 대마도 사신의 거처 혹은 접대처, 왜관에 거주하는 왜인들을 규율하는 관청 또한 조선과의 외교업무를 현지에서 담당하는 외교직원의 근무처로서의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이 일본에 파견한 가장 대표적인 사절은 일본 관백에게 파견한 통신사라고 할 수 있다. 통신사는 주로 경하나 조의를 목적으로 파견된 오늘날의 의례사절이었다. 동시에 통신사는 통신사행 중 일본의 사정을 파악하는 역할도 하였는데이는 오늘날 외교사절이 일반적으로 행하는 정보관찰 임무와 대동소이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통신사는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요하는 것이어서 상시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통신사에 비하여 경로도 짧고 격식도 간소한 대마도에의 문위행을 통하여 조선과 일본과의 관계가 근대 국제법적인 체제를 통하여 조선과 일본이 만나는 1870년대까지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근대적인 동양적 국제질서로서의 교린은 근대 국제법적 입장에 비추어보면 경성법(hard law)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교린은 유교적 가치질서에 입각한 신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으로 법적으로 어떠한 구체적인 내용을 의무적으로 부과한 체제는 아닌 것이다. 다만, 교린 질서를 유지하는 가운데에서도 군주간의 대등성 혹은 평등성을 확보하기 위한 의례적인 장치라든지, 국서와 서계의 작성과 수발에 연관된 제도라든지, 사신의 접수와 접대와 관련한 제도적 장치 등은 양국 모두에게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러한 점은 교린을 행하는 당사자들 간의 평등성을 확보하는데 주안점을 둔 것으로, 이는 오늘날의 주권평등의 원칙에 비견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근대 국제법의 핵심 원칙인 주권 평등의 원칙은 그 표현의 방법만 다를 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중되어야 하는 원칙이었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This paper reviews the foreign relations between Chosun Dynasty and Bakufu(幕府) in Japan through a book entitled “Jeungjeongkyorinji(增正交隣志)” which was written by Kunseo Kim. Chosun’s diplomatic policy towards Japan was maintaining “Kyorin”(friendly neighborliness relation, 交隣). Chosun and Japan treated each other as an equal partner. The essence of Kyorin system was accepting the equality between the King of Chosun and the Shogun of Japan.The Chosun had sent Tongshinsa(通信使) in order to maintain friendly relations with Japan specially to celebrate the succession of Shoguns. After the 1592 War between Chosun and Japan, Tongshinsa(通信使) had been sent 12 times. Japan, in general, maintained diplomatic relations with Chosun through Tsushima. The Governor of Tsushima had played a very important role in the Kyorin system. The Governor was himself a Chosun’s diplomatic partner and also was a delegate of the Shogun. In maintaing the Kyorin system, Waegwan(倭館) which was finally located in Choryang(草梁), had a special position. It was a residential area of Japanese living in Chosun, a service area for diplomatic missions sent by the Shogun and the Governor of Tsushima, and a place for trade between Japanese and Koreans. Although the weight of foreign relation between Chosun and Japan is not as heavy as that between Chosun and China, two countries developed a unique diplomatic technique called the Kyorin system which presupposes the equality of partners. However, due to the scarcity of diplomatic issues between two countries, both countries could not make hard legal rules governing them. In stead of making legal rules, they had acted based on the Confucian values such as faith and courtesy.
참고문헌 (27)
- "國譯 經國大典", ~
- "國譯 朝鮮王朝實錄", ~
- 김건서, "國譯 增正交隣志" (1998), 민족문화추진회
- 김구진, "國譯 通文館志" (1998),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강재언, "조선통신사의 일본견문록" (2005), 한길사
- 김세민, "한국근대사와 만국공법" (2002), 경인문화사
- 김용구, "만국공법" (2008), 소화
- 동덕모, "조선조의 국제관계" (1990), 박영사
- 마루야마 마사오, "번역과 일본의 근대" (2000), 이산
- 신헌, "沁行日記" (2010), 푸른역사
- 유성룡, "국역정본 징비록" (2007), 역사의 아침
- 하우봉, "조선후기실학자의 일본관연구" (2002), 일지사
- 한상일, "이토 히로부미와 대한제국" (2015), 까치
- 후마 스스무, "연행사와 통신사" (2008), 신서원
- 김현철, "개화기 "만국공법"의 전래와 서구 근대주권국가의 인식: 1880년대 개화파의 주권 개념의 수용을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 28(1), pp.127~152 (2005), 한국학중앙연구원
- 박현모, "세도정치기(1800-1863) 조선의 대외정책 연구", 국제정치논총, 44(4), pp.7~26 (2004), 한국국제정치학회
- 손승철, "朝鮮朝 事大交隣政策의 成立과 그 性格 –朝鮮朝 對外政策史 硏究試論-", 溪村 閔丙河 敎授 停年紀念 史學論叢 (1988)
- 손승철, "조선시대 교린체제의 분석과 그 문제점", 한일관계사연구, (창간) (1993)
- 손승철, "조선왕조실록 일본관계기사 내용분석(조선후기편)", 조선시대사학보, (15) (2000)
- 손승철, "조선시대 ‘통신사’ 개념의 재검토", 조선시대사학보, (27), pp.5~32 (2003), 조선시대사학회
- 이성덕, "「통문관지(通文館志)」에 나타난 조선과 청간의 대외관계(1636-1888) : 근대 국제법적 시각에서", 중앙법학, 15(3), pp.263~308 (2013), 중앙법학회
- 장순순, "조선후기 일본의 서계 위식실태와 조선의 대응 -『변례집요』를 중심으로", 한일관계사연구, (창간) (1993)
- 장순순, "조선후기 왜관의 설치와 이관교섭", 한일관계사연구, (5) (1996)
- 전해종, "韓中朝貢關係考 -韓中關係史의 鳥瞰을 위한 導論-", 동양사학연구, 1 (1966)
- 하우봉, "조선전기 대외관계에 나타난 自我認識과 他者認識", 한국사연구, (123), pp.8~270 (2003), 한국사연구회
- 하우봉, "조선시대의 통신사외교와 의례문제", 조선시대사학보, (58), pp.65~95 (2011), 조선시대사학회
- 허지은, "于湖 全海宗 先生 九旬紀念 韓中關係史 論叢 한중관계 2000년 동행과 공유의 역사" (2009), 소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