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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對日使行과 對馬島

Korean Envoys to Japan and their Relations with Tsushima during the Chos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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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조선초기의 대일외교는 조선국왕과 幕府將軍과는 敵禮關係의 교린외교를, 對馬島主를 비롯한 壹岐島主, 九州節度使, 大內殿, 小二殿 등의 지방호족과는 羇縻關係의 교린외교를 전개하는 多元的이고 重層的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일 통제책이 정비된 1443년 이후부터 조선의 대일외교는 이원적이고 중층적인 외교체제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조선국왕과 막부장군과는 적례관계의 교린외교를, 조선의 예조와 대마도주는 기미관계의 교린외교를 임진왜란 전까지 유지하였다. 조선후기에도 조선전기의 외교체제는 그대로 계승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에서는 막부장군에게는 적례관계의 교린외교에 입각하여 통신사를 파견하였으며, 대마도주에게는 기미관계의 교린외교에 입각하여 문위행을 파견하였다. 조선전기 대일사행은 주로 정치, 외교적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선의 필요에 의해서 파견되었다. 반면에 조선후기의 통신사나 문위행은 막부장군이나 대마도주의 사절 파견요청이 있어야만 파견하였다. 그리고 조선후기 통신사의 사행원이 조선전기 막부장군에게 보내는 사행의 사행원보다 4~5배정도 증가한 이유는 조선후기의 통신사가 막부장군의 습직 축하와 함께 문화교류의 측면이 두드려졌기 때문이었다. 한편 조선시대 막부장군에게 보내는 대일사행의 기간은 조선후기가 전기보다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조선전기에는 足利將軍의 지방통제력이 미약했고, 일본의 국내정세도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사행원의 안전을 위해서는 멀지만 안전한 길로 우회하거나 우호적인 지방세력의 협조를 얻어야만 했다. 그에 비해 조선후기에는 德川將軍이 지방세력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었으며, 대마도주를 비롯한 사행로 沿邊의 大名들에게 사행의 護行과 접대를 담당하도록 명령하였기 때문에 사행기간이 조선전기보다 많이 줄었다. 조선전기 대일 사행에 필요한 경비인 盤纏과 물품 등은 조선정부가 부담하였다. 조선후기에도 조선에서는 통신사 일행이 행차하는 데 소요되는 일반 경비와 公私禮單 등을 준비하였다. 그에 비해 일본에서는 통신사 일행이 부산을 출발하여 에도까지 갔다가 다시 귀국할 때까지 사행에 소요되는 日供과 공사예단 등의 비용을 막부를 비롯한 각 지역의 大名들이 부담하였다조선전기에는 대일사행을 파견할 때 사행이 지나가는 연변의 지방세력에게 호송을 요청하였다. 또한 조선에서는 대일사행을 호행한 일본의 지방 호족들에게 상으로 면포, 정포 등을 하사하기도 하였으며, 圖書와 관직을 하사하고 歲遣船도 정약해주었다. 반면에 조선후기에는 조선의 사신을 부산의 왜관에서부터 江戶까지 그리고 다시 부산에 돌아올 때까지 대마도가 통신사 일행을 호행하면서 안내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선후기 대일사행에서 대마도가 갖는 의미는 첫째, 대마도는 통신사와 문위행이라는 대일사행에 관여함으로써 조선정부에 대해서는 ‘조선의 藩屛’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하면서 무역권 독점을 통한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였다. 둘째, 대마도는 대일사행을 막부에 대하여 대조선 외교의 전담자로서의 위상을 공고하고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셋째, 대마도의 대일사행 참여는 대마도가 德川幕府의 유일한 대조선 교섭 통로로서의 대조선 교섭권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것에 그 목적이 있었다. 반면에 조선에서는 통신사를 대일관계에서 대마도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본의 국내정세를 정탐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Abstract

朝鮮初期の対日外交は、朝鮮国王と幕府将軍とは敵禮関係の交隣外交を、対馬島主をはじめ壱岐島主・九州節度使・大内殿・小二殿などの地方豪族とは羇縻関係の交隣外交を展開する、多元的で重層的な外交関係を維持していた。しかし、対日統制策が整備された1443年以後、朝鮮の対日外交は二元的な外交体制に変わった。朝鮮国王と幕府将軍とは敵禮関係の交隣外交を、朝鮮の禮曹と対馬島主は羇縻関係の交隣外交を壬辰倭乱の前まで維持した。朝鮮後期にも朝鮮前期の外交体制はそのまま継承された。そして朝鮮では、幕府将軍には敵禮関係の交隣外交に即して通信使を派遣し、対馬島主には羇縻関係の交隣外交に即して問慰行を派遣した。朝鮮前期の対日使行は、主に政治・外交的懸案を解決するという朝鮮の必要・目的から派遣された。一方、朝鮮後期の通信使や問慰行は、幕府将軍や対馬島主の使節派遣要請があって派遣された。この点で朝鮮前期の対日外交は積極的・能動的に朝鮮が主導した一方、朝鮮後期の対日外交は朝鮮前期よりも消極的で受動的だった。朝鮮前期に幕府将軍に送った対日使行員よりも、朝鮮後期通信使の使行員が460~500人と4~5倍ほど増加した理由も、朝鮮後期の通信使が幕府将軍の襲職祝賀とともに文化交流の側面が強かったためである。また、幕府将軍に派遣する対日使行の使行期間は後期になるほど減少した。その理由は、朝鮮前期には、足利将軍の地方統制力が微弱で日本の国内情勢も混乱していたため、使行員の安全確保のために安全な道を選んだり、友好的な地方勢力の強力を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が、朝鮮後期は、徳川幕府の将軍が地方勢力を強力に統制し、朝鮮が通信使を派遣した時には、対馬島主を含めた使行路沿辺の大名たちに使行の護行と接待を担當させたため、使行期間が朝鮮前期よりも大きく短縮されたのである。朝鮮前期対日使行の諸般経費を誰が負担したのかは、はっきりとはわからないが、使行に必要な経費である盤纏や物品などは、朝鮮政府がすべて負担したものと思われる。朝鮮後期においても、朝鮮では通信使一行の出発に必要となる一般経費と公私禮単などを準備した。一方、日本では通信使一行が釜山を出発してから帰国するまでの使行に必要な日供や公私禮単などの莫大な費用を、幕府と各地域の大名たちが負担した。朝鮮前期には、対日使行を派遣する時、使行が通る地方の豪族に使行の護送を要請した。また朝鮮では、対日使行を護送した日本の地方豪族たちに綿布や正布、図書や官職などを下賜したり、歳遣船を定約したりした。このため、対日使行を護送した日本の地方豪族たちは、受図書倭人または受職倭人になったり、歳遣船の定約を通じて朝鮮と通交貿易ができる独自の権限を確保したりした。一方の朝鮮後期には、朝鮮の使臣を釜山の倭館から江戸まで、そして再び釜山に帰って来るまで対馬島が通信使一行を護送・案内する役目を担った。朝鮮時代対日使行における対馬島の持つ意味は、①対馬島は通信使と問慰行という対日使行に関与することで、朝鮮政府に対しては 「‘朝鮮の藩’屏」という点を絶えず強調しながら貿易圏独占による経済的利潤を追い求めた。②対馬島は幕府に対し、対朝鮮外交の専担者としての地位を強調し、対日使行を自らの存在を強くアピールする手段として利用した。③対馬島の対日使行参加は、対馬島が徳川幕府の唯一の対朝鮮交渉通路として、対朝鮮交渉権を持続的かつ安定的に確保することにその目的があった。一方、朝鮮では対日関係において、対馬島を統制するための手段として通信使を活用し、対日使行を日本との友好的な関係を維持する一方、日本の国内情勢を探る手段としても活用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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