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과 고려의 변발(辮髮) 연구
A Comparative Study on Pigtails for the Mongolian and the Kory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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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Information sources about Mongolian pigtail of 13-14C are relatively rich. But it was difficult to estimate the shape of the pigtail in detail with the descriptions in historical writing or travel books only, and paintings were neither enough to observe the beautiful shape of the pigtail closely on the whole because the portrayed characters were always wearing their hats. However, the authors could trace the detailed shape of the pigtail of 13-14C through close investigation into Mongolian stone statue of the period. In conclusion, the authors performed a comparative study by historically comparing the historical writings, archeological materials, ethnological materials and figurative arts featuring medieval Mongolian pigtail. And the authors paid careful attention to the meaning of those materials to the hairdo history..Historically nothern minority races have become assimilated with surrounding races in language, culture and customs through long economical and cultural exchange, and today their national traits gradually fade away by globalization. But each minority race still stands independently and maintain its own traditional culture. only recently began the study by Korean researchers on Mongolian pigtail, and there is still much to be discussed in ethnological issues such as racial pedigree.
참고문헌 (20)
- "앞머리의 몽골어음은 ‘고홀’ 또는 ‘게젝’이다 《고려사》에는 한자음의 轉成으로 겁구아 로 표기하였으며 이를 달리 삼탑두 라고도 불리었다 위와 같은 머리 모양은 원 제국 당시 칸에서 평민에 이르기까지 수염의 형태만 다를 뿐 오직 한 가지 양식으로 변발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칭기스칸은 제국법인 ‘자삭’의 효율적인 적용을 위해 우리에게는 質子제도로 알려진 케식텐제 를 통하여 먼저 각 국의 왕들에게 이를 교육하고 가르켰을 것이다"
- "바이에르 교수는 이들 민족의 변발에 대해 이들이 단지 변발을 했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 실제 어떠한 변발형태를 가지고 있었는가는 명료하지 않다 그러나 11C 거란의 고분벽화에는 거란인들의 의상이나 변발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벽화를 보면 거란인들은 정수리 위에 있는 머리털은 삭발하고 다른 것들은 남기고 있는데 이 방식은 몽골인들이 가지고 있는 방식과 부분적으로 유사한 면이 있다고 보았다"
- "산서성 고고연구소"
- "“내몽고 적봉시 元寶山 區宁", 협서성문물관리위원회
- "后髮 以 色絲富人用珠 金飾 婦人辮", pp.~79
- "修武縣文物管理所", pp.~95
- "고려시대 원 간섭기 일반복식의 변천", pp.146~149 (2000)
- "교수는 이들 여행자들의 기록을 종합하여 이 두발의 규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확히 정리하였다 즉 이 이발법에 의하면 머리의 앞부분과 정수리부분을 밀은 다음은 머리 앞부분의 이마쪽 부분은 머리카락을 남겨 짧게 잘라 내리고 좌우의 머리카락은 두 갈래로 어깨까지 내려뜨렸음을 알 수 있다 남자는 머리의 정수리부분을 사각형으로 밀고 또한 그 사각형의 앞의 양귀퉁이부터 머리의 양측면을 따라 관자놀이 주변까지 밀었다 또는 관자놀이와 목 뒷부분을 뒷머리 골진 부분과 이마 시작 부분까지를 밀었다 이마의 양쪽에는 한 묶음의 머리카락을 남겨서 어깨 위로 늘어뜨리는 정도로 하고 머리의 양측 면에 있는 머리는 그대로 나두고 양쪽 귀의 주변에서 땋아 내렸다" (1930)
- "몽골석인상의 연구", pp.59~60 (1994), 혜안출판사
-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것으로 변발이 확인되는 자료로는 기황후의 능에서 발견된 1기와 삼별초가 진도에서 왕으로 추대했던 承化侯 溫의 능 앞에 세워진 1기 및 한국몽골학회가 1990년 제주도 석인상 답사에서 발견한 약 2기의 석인상에서 중세 몽골인의 頭飾이 확인된다"
- "조선조 궁중풍속연구" (2000), 보광문화사
- "高麗時代의 歸化人 硏究" (1996), 국학자료원
- "몽고와 고려의 변발", pp.~37 (1926)
- "《남시베리아와 몽골지역에 있는 돌조각 》소련 고고학연구자료집〔МИА〕NO" (1952)
- "〈사람형상을 지닌 고대 돌궐석인상과 그 건립목적" (1964)
- "《시에미리에치야의 석인상" (1966)
- "〈폴로베츠크의 석인상", 〉고고학자료, pp.~4 (1974)
- "《알타이주에 있는 고대 돌궐석인상들" (1984)
- "〈동카자흐스탄의 중세초기 석인상들" (19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