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기 중엽에 있어서 신라와 발해의 통교관계 -『三國史記』인용, 賈耽『古今郡國縣道四夷述』逸文의 분석-
The relationship of Shilla and Balhae in the mid 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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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대개 8세기 초두부터 10세기 전반에 걸친 장기간, 서로 국경을 접하고 있던 신라와 발해와 의 관계에 대해서 두나라 사이의 교섭에 관한 기록이 매우 적은 사실로부터 두나라가 일관하 여 대립관계에 있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 한편으로, 두나라 사이에는 실제 빈번한 교섭이 이 루어지고 있으며 다만 그것이 기록에 전해지지 않을 뿐이라고 하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견해 의 상반된 한 요인으로서,『 三國史記』地理志말미에 인용된『賈耽古今郡國志』『( 古今郡國縣道 四夷述』) 逸文의 이해문제가 있다. 거기에는 신라 泉井郡으로부터 발해 東京龍原府까지의 驛 路의 존재를 전하고 있지만, 이러한 驛路의 존재는 두나라의 항상적 교섭을 전제로 한다는 것 이다. 그러나 그『賈耽古今郡國志』일문의 사료적 성격이 분명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먼저 그 사료적 성격을 음미하고 이어서 그것을 실마리로 하여 8세기 중엽의 신라 와 발해와의 통교관계에 대해 고찰한다. 『續日本紀』에 보이는 당나라 勅使韓朝彩는 대개 762∼764년에 걸쳐 唐∼渤海∼新羅∼唐 의 루트로 동아시아제국에의 使行을 완수하였다. 여러 책에 단편적으로 남긴 賈耽『古今郡國 縣道四夷述』일문 가운데『三國史記』地理志인용의 逸文과『新唐書』地理志말미의『登州海行入高麗·渤海道』는 韓朝彩의 동아시아 使行때의 견문에 기반한 것이며 매우 귀중한 동시대 사료라 생각된다. 그것에 의하면 동해(일본해)측에 있어서 신라·발해 두나라 경계의 통교는 완전히 길이 끊어지지 않은 채 발해는 역참을 설치하고 신라에 이르는 신라도를 중시하고 있 었다. 한편『新唐書』新羅傳의 長人記事에서는 두나라 변경에서의 극심한 군사적 대립관계가 간취된다. 그 때문에 8세기 중엽의 신라와 발해와의 통교관계에 대해서는 두나라 사이의 우 호적 또는 빈번한 교섭을 상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두나라 사이의 통교는 단절하고 있지 않은 데, 신라영역 백성과 신라동북경계 밖, 즉 발해 동해(일본해)측 남쪽변경의 거주민에 의한 두 나라 경계의 왕래는 근근히 존재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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