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靺鞨 7部의 實體와 渤海와의 關係

靺鞨在渤海史中的實體和意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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靺鞨 7部의 출현은 勿吉을 포함하여 高句麗가 주변 여러 집단을 일곱 개의 地域單位로 구분하여 인식한 것과 관련이 있다. 渤海時代의 말갈은 고구려 멸망 전후 말갈 7부가 지역집단으로서의 성격을 점차 상실해가며 다시 재편된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말갈은 점차 발해라는 국가테두리 안에 편입되어 발해민이 되었다. 이들 중 말갈로서의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며 활동했던 집단에는 鐵利, 拂涅, 越喜, 黑水, 虞婁部등이 있다. 발해는 振國(震國) 초기부터 靺鞨諸部와 연합을 이루며, 唐에 대항하여 성장하였다. 이들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 713년 당이 大祚榮을 渤海郡王에 冊封하기 위해 崔忻을 ‘宣勞靺羯使’로 파견한 사실이다. 이때 당은 거란과 돌궐을 견제하기 위해 진국 중심의 연합세력인 말갈제부를 함께 끌어들이려고, 崔忻을 ‘冊封使’가 아닌 ‘宣勞靺羯使’로 파견했다. 발해는 이러한 세력재편과 관련하여 8세기 중엽까지 당에 의해 靺鞨, 東藩靺鞨, 渤海靺鞨이라고 불려졌다. 공교롭게도 철리·불열·월희의 당 조공 단절과 함께 渤海靺鞨이라는 표현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증명된다. 이후 발해는 흑수 및 말갈제부의 대외활동을 철저히 통제해 나가면서 점차적으로 발해로 통합해 나갔다. 결국 740년과 741년 이후에는 철리·불열·월희의, 752년 이후에는 흑수의 對唐조공을 완전히 차단하면서 복속을 일단락 시키게 된다. 文王代에 말갈제부에 대한 복속이 일단락되면서, 발해는 上京遷都후 발해내지 뿐 아니라 복속지역 전역에 걸쳐 지방제도를 일원화시켜 나갔다. 늦어도 9세기 초가 되면 5京15府62州100여개의 縣으로정비된다. 이러한 지방제도의 재편은 말갈집단에 대한 편제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말갈에 대한 간접지배를 직접지배로 전환하면서 對日교역에 참여할 수 있는 首領層을 65개 정도의 집단으로 재정리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정한 集團徙民과 말갈자체의 분화가 동시에 이뤄졌다. 9세기말 이후 新羅및 後唐과 교섭했던 黑水國과 寶露國등의 활동은 발해 남쪽 변경지역으로 이주하였던 집단들의 활동으로 이해된다. 발해 후기에 새롭게 등장한 말갈세력으로는 達靼과 女眞을 들 수 있다. 달단과 여진은 본래 흑수말갈로 발해에 役屬되었다가 奚와 契丹의 공격을 받고 흩어져 하나는 여진이, 하나는 달단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분화는 집단 이주와 함께 흑수말갈 역시 지역집단으로서의 성격을 완전히 상실해 갔음을 보여준다. 말갈 7부의 출현이 고구려의 지역집단 구분인식과 함께 출발했다는 점에서, 고구려멸망 후부터 발해시기에 걸쳐 말갈의 해체와 재편성에 따른 지역 집단적 성격의 상실은, 말갈이라는 명칭이 사라지게 된 계기가 된다. 이후 압록강 북쪽에 살던 여진이 거란에 의해 東北諸種族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인식되면서, 여진으로 대체되었다. 발해와 말갈 관계의 최종 향방을 보자면, 발해의 말갈지배는 그 시기가 짧았 기 때문에, 사회발전이 고르지 못한 세력들 간에 각자의 정체성의 차이를 완전히 극복시키지 못했다. 이것은 발해 멸망 이후 渤海遺民과 女眞으로 구분되어 인식되는 원인이 된다.

Abstract

靺鞨七部一詞的出現源自於包括把勿吉在內的高句麗周邊諸族分爲七個地域單位的認識.渤海時代, 靺鞨七部逐漸喪失地域集團的性質, 進行再編. 大部分的靺鞨漸漸被編入渤海的國家框架, 成爲渤海之民. 繼續保持靺鞨的正體性而活躍的集團有鐵利, 拂涅, 越喜和黑水,虞婁等部. 渤海從振國(震國)初期就與靺鞨諸部聯合, 在與唐對抗中逐漸成長. 713年, 唐爲了冊封大祚榮爲渤海郡王, 特派崔忻爲“宣勞靺羯使”, 從這一事實可一窺他們之間的關係. 當時唐爲了牽制契丹和突厥, 拉攏以振國(震國)爲中心的靺鞨諸部, 故而所派崔忻的名分並不是“冊封使”, 而是“宣勞靺羯使”. 與此勢力再編相關聯, 至8世紀中葉, 在唐的立場上漸漸換成靺鞨,東藩靺鞨, 渤海靺鞨等名稱表達. 恰巧, 在鐵利·拂涅·越喜與唐朝貢斷絶時, 渤海靺鞨這一名稱也消失這一史實也可以做爲證明. 之後, 渤海將黑水及靺鞨諸部的對外活動絶對控制的同時, 穩步的統合爲渤海. 最終, 使得鐵利·拂涅·越喜在740年和741年以後, 黑水在752年以後, 斷絶了對唐朝貢, 役屬於渤海. 文王代對靺鞨諸部的服屬暫告一段落, 遷都上京之後不僅對渤海內地, 乃至全部服屬區域都實行了一元化的地方制度. 最晩到9世紀初, 將全境整合劃分爲5京·15府·62州和100餘縣. 筆者認爲這種地方制度的改編對靺鞨集團的編制也産生了影響. 對靺鞨由間接支配轉換爲直接支配的同時, 將能參與對日貿易的首領層整合爲65人程度的集團. 在此過程中, 産生了集團的遷徙和靺鞨本身的分化. 渤海後期和末期, 和新羅及後唐均有往來的黑水國和寶露國等的活動, 筆者認爲就是移居渤海南部邊境的集團的活動記事. 渤海末期新登場的靺鞨勢力中加入了達靼和女眞. 達靼和女眞本是黑水靺鞨, 役屬於渤海, 後受到奚和契丹的攻擊分化爲達靼和女眞. 伴隨著集團性移民而來的這種分化, 正說明了黑水靺鞨完全喪失了地域集團的性質. 如果從靺鞨七部的出現是出於高句麗的地域集團劃分認識這點來說, 從高句麗滅亡到渤海時期, 伴隨著靺鞨的解體與再改編, 其逐漸喪失了地域集團的性質, 這成爲靺鞨這一名稱消失的契機. 之後, 生活在鴨綠江北岸的受控於契丹的女眞逐漸被看作是東北諸民族的代名詞, 卽女眞. 最後全面來看渤海和靺鞨的關係的話, 會發現由於渤海支配控制靺鞨的時期較短, 並沒有能完全消除原本社會發展不均衡的各勢力間的正體性差異. 這也是渤海滅亡後將渤海遺民與女眞分別看待的原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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