扶餘의 國勢變動相認識에 關한 試論
A new consideration of changing sphere of Puyo’s national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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扶餘史관련 軍事行動을 분석한 결과 부여사 진전상은〔國家形成期(2 C B.C.~1 C A.D.) → 前期扶餘(1 C~3 C A.D.) → 後期扶餘(3 C~5 C A.D.)〕라는 세 단계로 분획된다. 부여는 吉林市일대에 분포한 泡子沿式文化를 기반으로 국가 형성의 길을 걷게 되었다. 부여 국가형성의 움직임은 B.C. 3 C 이후에서 B.C. 2 C 말 사이을 始點으로 하여 胎動하고 있었다. 다만 국가형성의 時點을 좀더 특정하면, B.C. 2 C말~A.D. 1 C로 비정할 수 있다. 부여는 국가형성기 이래 길림시 일대의 중심지와 주민집단 별∙지역별 周邊性이 강한 제 지역으로 분별되면서 遠心性∙多邊性이 강한 체질을 가지고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였다. B.C. 1 C 부여-고구려 간의‘勢力轉移’상황이 戰爭이라는 새로운 위기를 불러왔다. A.D.21~22년의 戰役은 이후의 부여-고구려 관계 진전의 향방에 있어 고구려의 주도권 확립을 결정짓는 계기가 된다. A.D. 1 C~3 C 부여의 대외정책은 國益의 관점에서 수행되어졌다. 부여국가의 四出道體制는 광역의 勢力圈을 가진 4 개의 下位地域圈을 바탕으로 운영되었다. 이런 遠心性∙多元性이 강한 사출도체제는 중앙 국왕의 求心性과 원만히 조화될 경우에만 순기능을 한다는 한계성이 있다. 부여 국가권력 운용 중심의 원심성은 사출도체제의 그것과 相乘作用을 하면서, 국가 危機管理역량의 실효적 제고에 역작용을 하였다. A.D. 2~4 C 대 扶餘圈域내에서 유적지가 급감하는 점은 移動性이 강하며 상대적으로 人口密度가 적은 遊牧經濟로 이 지역의 경제구조가 재편된 결과였다. 부여 국가경영 구조의 원심성은 이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힘의 결집 노력을 힘들게 했다. A.D. 4~5 C 후기부여의 중심지는 遼源일대로 비정된다. A.D. 346년 前燕의 공멸 작전을 당한 부여는 그 특유의 국가권력 운용 중심의 다원성∙원심성에 힘입어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부여 국가경영 구조의 취약성이 역설적으로 부여로 하여금 그 국가의 持續性을 담보해주는 機制로 작용하고 있었다. 고구려는 송화강 유역 경영의 실효성을 제고코자 A.D. 494년 부여국가를 병합하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Abstract
If we analyse the military action of Puyo, three historical stage could be formulated as follows: Period of State Formation(2 C B.C.~1 C A.D.) → Early Puyo(1 C~3 C A.D.) →Late Puyo(3 C~5 C A.D.)Since the early B.C.2 C, Puyo started to form its State on the basis of Pojayoun typical Culture, spread in around Kilim city. Puyo tribe kept the strong eccentricity character according to the region since the period of State Formation. And after the campaign in A.D.21 - 22 against Koguryo, Puyo lost its dominating powers in this region to Koguryo. The main foreign policy of Puyo in between A.D. 1 C~3 C was based on the national interest. They managed Four Gate Way system according to the Four Sub Region of local powers. These plurality and eccentricity of State management could not show the efficiency of the crisis management by the dis-synergy with the eccentricity of Four Gate Way system. But paradoxically, this fragile management supplied the mechanism to continue the State in facing the several crisis. Koguryo amalgamated Puyo in A.D. 494 to dominate practically Songhwa River side ar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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