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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2010~2022) 중국학계의 발해사 연구 동향 및 쟁점

Recent (2010-2022) Trends and issues in the historical research on Balhae history in Chinese acade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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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학계에 발표된 발해 관련 연구성과 중 사료를 대상으로 한 성과물의 주장을 검토하였다. 현황과 관련해서 2000년 이후 증가되었던 추세가 2015년을 정점으로 감소한 점과 기존 연구자 이외에, 신진 연구자의 합류가두드러지게 늘어난 점이 주목된다. 이들은 각 기관에서 석박사과정을 거치면서 전문적인 연구역량을 키웠으며, 정부의 지원을 받아 발해사 연구를 추진하였는데, 이것은 연구자 간 세대교체가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교량적 역할을 하였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연구 주제의 범위가 두드러지게 확장된 점도 주목해 볼 만하다. 발해사 관련 문헌 연구는 기왕의 연구와 다른 부분을 찾을 수 없었고 별다른 문제의식도 발견하지 못했다. 발해 국호가 “발해=말갈”이라는 기존의 인식이 지속되었고, 그 주체 민족도 “고구려인” 또는 “거란인”이라는 기왕의인식과 다른 부분이 없지 않지만 출자나 주민구성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발해 주체 민족을 가리킨대상이 다를 뿐만 아니라 그 범위도 논자마다 확대되는 점은 주의를 요한다. 또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치중하여 당과 발해의 관계를 “중앙과 지방”, “지방정권”, “소수민족”, “민족” 등 용어를 사용함은 물론 현재의 중국 영토내에 있는 모든 민족을 중국사의 대상으로 인식한 “동북변강” 또는 “민족할거”라 하여 현재 중국의 통일된 다민족국가의 틀에서 인식하려는 움직임은 주목해 볼 만하다. 요동반도 점유 사실에 대해서는 기왕의 연구에서 전투의 발생 사실 자체를 부정하였던 것과는 달리 사건의 발생 사실을 긍정하고, 그 위치ㆍ공격 루트 및 당시 발해의 발전 전략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천도와 관련해서는 흑수말갈과의 전쟁 이후 상경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그 입지 선정과정에서 지정학적 위치는 물론 군사적 입장에 대한 고려가 있었다는 점을 주장하였으며, 그 원인이 “안사의 난” 대비였다는 주장에 대해 그 시기가 난 발생 이전이므로 발해의 북진 전략의 실현과정에서 치밀하게 준비된 상황으로 이해해야한다는 주장도 눈에 띈다. 발해의 제도에 대해서는 발해의 관제를 당의 그것과 일치시켜 보려는 시도가 지속되었으며, 이러한 시도는 복식 제도 연구에도 예외없이 적용되었다. 경제 산업 연구에서도 “노주의 벼”에서 알 수 있듯이 발해 시기에 “수도작재배”가 이루어졌다는 주장과 함께 “태백산의 토”를 “토끼”가 아닌 “새삼”으로 인식한 것도 주목할 만한 견해이다.

Abstract

This article reviewed the claims of achievements targeting historical research among the recent research results related to Balhae published in Chinese academia. Regarding the current situation, it is noteworthy that the trend that has increased since 2000 peaked in 2015 and that in addition to the researchers who have been active in the past, the number of new researchers has increased significantly. They developed professional research capabilities through master's and doctorate courses at various levels of institutions, and promoted research on Balhae History through government support. This means that it played a bridge role in facilitating generational replacement between existing and a successive academic generation. In addition, it is worth noting that the scope of the research subject has been significantly expanded. In the historical research describing the history of Balhae, there was no difference from the previous research, and no awareness of the problem was found. The previous perception that Balhae's national name was "Balhae = Malgal" continued. The people are also different from the claims of "Goguryo" or "Khitan" but the people's perception of the people and the people has not changed. In this regard, it should be noted that not only is the perception of the Balhae people different, but the scope of each researcher is continuously expanding. It is also worth paying attention to the expression of Tang and Balhae's relationship with "central and regional", "local regimes", "minority", "national", "the northeastern frontier", and "national territory", which reflect the current multi-ethnic state system. Regarding the fact of occupation of the Liaodong Peninsula, the previous study denied the fact that the battle occurred. However, it is noteworthy that this study affirms whether the incident occurred, and examines its location, attack route, and development strategy of Balhae. Regarding the relocation of the capital, it was argued that the Sanggyeong area was noted after the conquest of Heuksu Malgal, and its location was not only geopolitical but also military considerations. In other words, it is argued that the relocation of the capital was a preparatory measure for the "Ansa Rebellion" before the occurrence of the time, so it is a result of meticulously prepared in the process of realizing the Northward strategy in Balhae. Attempts to understand Balhae's government office system in the same way as the Tang Dynasty system continued, and this perception was applied without exception in the official uniform system. In economic and industrial research, it is also noteworthy that rice cultivation was already carried out during the Balhae period, and the rabbit of Taebaeksan Mountain, a special product, was recognized as "sae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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