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지역에 투영된 陶淵明 형상 고찰
A Study on the Shape of Taoyuanming in Andong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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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안동 지역에서 살펴볼 수 있는 여러 문화유적 및 문인들의 시문(詩文) 속에 투영된 도연명(陶淵明)의 형상을 고찰하는 것을 주지로 삼는다. 먼저 안동의 명승지로 손꼽히는 안동팔경(安東八景) 가운데 ‘귀래정(歸來亭)’, ‘임청각(臨淸閣)’, ‘도산서원(陶山書院)’ 등이 모두 도연명의 은일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 특히 ‘임청각’을 세운 이명(李洺)의 아들인 이굉(李肱)은 ‘반구정(伴鷗亭)’을 짓고 은거하였고, 또 그의 아들인 이용(李容)은 ‘어은정(漁隱亭)’을 지어 은거하는 등, 3대(代)에 걸쳐 도연명식 은일을 실천하기도 했다. 안동 지역은 도연명이 그러했듯이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의 뜻을 이루는 중요한 공간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안동 지역에서 은거를 실행했던 은사(隱士)들의 사상적 배경에는 도연명의 형상이 곳곳에 스며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안동 지역에 투영된 도연명의 형상은 <귀거래사>로 크게 대변되고 있었다. 실제로 안동 지역의 중요 문화재인 ‘귀래정’, ‘임청각’, ‘반구정’, ‘어은정’, ‘은자암’ 등은 모두 도연명의 <귀거래사>로 대변되는 은일 형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 또한 농암 이현보와 퇴계 이황은 더욱 직접적으로 도연명의 ‘귀거래’를 흠모하며 실천하기도 했다. 특히 농암과 퇴계가 창작한 시문(詩文) 속에는 도연명에 대한 추앙의 뜻이 매우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물론 이러한 점은 후세 안동 지역의 은일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Abstract
The main building focuses on the intensive consideration of Taoyuanming's figures projected into the verses of various cultural heritages and writers found in the Andong area. First of all, among the famous places of Andong, ‘Giraejeong,’ ‘Imcheonggak,’and ‘Dosan-Seowon’ were all deeply related to Taoyuanming's ‘Yinyi’ In particular, Yi Gong, the son of Yi Meong, who founded Imcheonggak, built and hid Ban Gujeong, and Yi Yong, his son, Eo Eunjeong, and lived in hiding. The Andong area, as Taoyuanming did, was an important place to step down from office and form a silver lining. Particularly noteworthy, the ideological background of the monks who implemented the hiding in the Andong area was permeated with the shape of Taoyuanming. In fact, the important cultural assets of the Andong region, ‘Gwiraejeong,’ ‘Imcheonggak,’ ‘Bangujeong,’ ‘Eoeunjeong,’ and ‘Eunjaam,’ were all deeply related to the silver-day shape represented by Taoyuanming's ‘Guiqulaici.’ In addition, Nongam Yi Hyeon-bo and Toegye Yi Hwang practiced more directly with the admiration of Yinyi of Taoyuanming. In particular, in the poem created by Nongam and Toegye, the meaning of mourning for Taoyuanming was very directly revealed. Of course, it is easy to assume that this would have had a significant impact on the silver culture of the later Andong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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