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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석의 정체성과 글쓰기의 의미

Hwang Yun-seok’s Identity and Meaning of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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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황윤석의 삶과 작가적 정체성은 ‘지방 지식인(地方知識人)’과 ‘기록(記 錄)’이라는 단어로 집약하여 말할 수 있다. 그는 궁벽진 시골에서 태어나서 부단한 노력을 통해 박학한 선비로 인정을 받았다. 그는 보수적실용주의를 지향하여 성리학을 근본이 되는 체(體)로 삼고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 박학을 용(用)으로 삼았다. 경화사족과의 교유를 통해 지식정보의 중요성을 자각했던 황윤석은 장서 구비에 힘쓰고 이를 기반으로 후손들을 교육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태생적인 현실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공간적, 정치적 소외에서 오는 결핍과 불우를 뼈저리게경험해야 했고 한미한 관직을 전전하느라 학문을 완성할 기회마저 놓치고 만다. 그의 글에는 이상과 현실의 부조리에서 기인한 상반되고 분열된 자아가 보인다. 이런 점에서 그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법이자 진정성을 확보하여 후세의 평가를 기다리는수단이었다. 그가 남긴 글은 이러한 고뇌의 기록이다. 그리고 한평생기록과 글쓰기에 골몰했던 그의 행위는 결핍과 허기를 치유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Abstract

Hwang Yun-seok’s life and identity as an author can be summed up by these words: ‘local intellect’ and ‘records’. Though he was born in a remote countryside, he made restless efforts and became acknowledged as a seonbi of erudition. Pursuing conservative pragmatism, he took neo-Confucianism as Che (體), the basis, and erudition as Yong (用) along with the trends of the time. Hwang Yun-seok who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knowledge and information through association with Gyeonghwasajok did strive to buy books and arrange acquired knowledge systematically. However, he failed to overcome obstacles in reality he was born with. He had to face deficiency and deprivation attributed to spatial and political alienation severely and missed a chance to complete his sciences while wandering around public posts worthlessly. In his writing, we can see his contradictory and split ego resulted from absurdity between the ideal and reality. To him, writing was a means to assure his own identity and wait for next generations’ evaluation securing authenticity with it. The texts he left can be regarded as the records of his agony, and his behavior of being immersed into recording and writing in his entire life is, in fact, the process of healing by satisfying his deficiency and th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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