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1930년대 ‘남편’을 통해 본 가족의 변화 - 『신여성』과 『별건곤』을 중심으로 -
‘Husband’ and Changes in Family Discourse in the 1920s-193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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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연구의 목적은 『신여성』과 『별건곤』을 중심으로 1920~30년대 가족담론에 나타난 ‘남편’을 통해 가족관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연구가 ‘남편’에 주목하는 이유는 식민지기 매체에서 ‘남편’이 자주 논해졌는데,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선행연구는 여성의 관점에서만 당시의 가족을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다음 세 가지의 연구문제를 통해 연구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첫째, ‘남편’이 등장한 사회적 배경을 조선총독부의 가족정책과 결혼관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매체에서 ‘남편’은 어떻게 드러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셋째, ‘남편’은 가족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가를 분석하고자 한다.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총독부는 민적법을 실시하면서 호주권을 강화시켰고, 법률혼주의를 채택하였으며, 기혼여성 즉 아내의 법률적 행위를 남편에게 위임하도록 함으로써 법적 권한을 제한하였다. 이러한 법률적 장치는 남편의 지위와 권리를 강화시키면서 남편에 대한 여성의 종속을 강제하는 효과를 낳았다. 둘째, 성과학 담론은 여성의 성적욕망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설명하면서, 이것을 ‘결혼’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여성이 노처녀와 같은 비정상으로 남지 않으려면 ‘남편’이 있어야 했다. 셋째, 『신여성』과 『별건곤』에서 ‘남편은 논설, 수필, 소설, 토론회, 탐방기, 만문만화, 설문 등의 매우 다양한 형식으로 비교적 자주 논해졌으나, 이러한 ‘남편’ 이야기는 ‘남편’으로서의 정체성이나 ‘남편됨’의 중요성을 논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넷째, 법률혼주의는 ‘제2부인’인 첩이 정식 아내가 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즉 남편이 ‘제1부인’과의 이혼이 가능하고, 또 남편의 ‘인지’로 첩의 자식도 家의 정식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아내’의 지위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다섯째, 남편들은 가사 일체를 아내에게 일임하였고, 아내들은 그런 남편을 수용하면서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아내, 어머니, 주부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남편’ 담론은 가정생활에 필요한 남편의 역할이나 규범을 말하기 보다는 가정 안에서의 여성 역할을 강화시키면서, 아내, 어머니, 주부의 규범을 만들었다.
Abstract
This study aims at grasping the changes in family discourse in the 1920s and 1930s through the position of 'husband'. For the purpose of this study, the contexts of family discourse and family policy in 『Shin yeosung』 and 『Byolgeongon』 were referred, and the major issues are as follows. Firstly, the family register(hojeok) system and renaming policy(chang ssi gae myong) in Japanese Colonialism consolidated the right of head of family(hoju). Secondly, the means of marriage and husband was changed while it had been claimed that ‘husband’ is the answer for dealing with sexual desire in women. Thirdly, the concept of master-servant relationship between husband and wife was strengthened as the legal marriage system was adopted and the legal rights of wife were delegated to husband. Fourthly, ‘wives’ status could not be guara nteed as in the past with the appearance of ‘second wife’ and the diffusion of ‘free love’. Fifthly, male gender roles in domestic affairs were not expected as the roles of women in a family were emphasized. Lastly, the discussions on ‘husband’ had no impact on the identity as husband, and rather strengthened gender norms for women as a wife, a mother and a housew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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