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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초 악장 <납씨곡(納氏曲)>의 특징과 수용 양상

The Characteristics of Napssigok and Its Influence on Later Court Lyr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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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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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선초 악장 <납씨곡>의 특징을 살피고 <납씨곡>이 이후의 작품에 끼친 영향을 추적함으로써 그 수용사적 맥락을 검토하는 데 목적을 둔다. 공민왕대에 동북면으로 침범해 온 북원의 나하추를 격퇴한 태조 이성계의 위업은 조선 초기의 각종 사서들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특히 『태조실록』 「총서」에서는 이성계가 몸소 적진에 뛰어 들었던 용장이었다는 점을 강조하였으며, 당시 28세에 불과했던 젊은 이성계의 재기발랄함도 함께 조명하였다. <납씨곡>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이 잘 반영되어 나타난다. 감히 대적할 수 없었던 나하추의 강성한 세력을 언급한 후, 태조가 손수 기병을 이끌고 적진의 심장부로 돌격하여 군사들의 사기를 진작하였던 사적을 서술하였다. 불의의 일격을 당해 우왕좌왕하는 적병들을 일거에 섬멸하는 광경을 강렬하게 묘사하면서, 동북면이 비로소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고 마무리 지었다. 이처럼 <납씨곡>에서는 전투의 전말이 속도감 있게 서술되고 있으며, 젊고 역동적인 이성계의 기상과 용맹이 부각되었다. 태조의 무공을 추상적으로 언급하는 데 그친 <궁수분곡>, <정동방곡>과 견줄 때 그 같은 특징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납씨곡>이 후대에 활발하게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내용상의 자질에 힘입은 바 크다. 실제로 <납씨곡>은 태종대에 이르러 무난히 궁중 연회악의 곡목으로 채택된다. 다만 작품의 가치는 한정적으로만 인정을 받게 되는데, 이는 이미 왕조 창업이 이루어진 후에는 강건한 무장보다는 천명을 부여 받은 군왕의 모습으로 태조를 각인하는 작업이 보다 긴요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태조를 무인의 형상으로 표출해야 할 계기가 마련되면 <납씨곡>의 활용도 역시 제고되는 현상이 발견된다. 가령, 세종대의 <팔준도부>와 <용비어천가>에서는 태조를 무인으로 그리는 데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은 탓에 과감하고 패기 있는 태조의 모습을 강조한 <납씨곡>의 주지가 큰 변개 없이 유지되고 있다. <납씨곡>이 둑제의 핵심적인 연행 곡목으로 채택된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파악된다. 군례인 둑제에서는 무관들의 기개와 긍지를 떨쳐 보일 수 있는 역사적 실례가 제시되어야 하거니와, 조선의 경우에는 창업주인 태조가 곧 뛰어난 무장이기도 하므로 기왕의 <납씨곡>을 십분 활용할 수 있었다. 대장군의 영도력과 무용을 상기시키는 데 있어서 <납씨곡>만한 작품을 달리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한편, <납씨곡>은 형식적 측면에서 후대 작품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16구를 각 4구씩 4장으로 분장하고 국문으로 현토하여 <청산별곡>의 악곡에 올려 부르는 <납씨곡>의 연행 형식이 새로운 악장을 짓는 데 하나의 선례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성종대의 <임옹곡>은 공자에게 의례를 올리는 장중한 분위기를 부각하였기에 내용적 측면에서는 <납씨곡>과 별반 관련이 없으나, <납씨곡>의 형식을 활용하여 또 다른 악장을 만드는 방식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사례이다. 연산군 연간에도 이러한 활용 방식이 발견된다. 연산군은 갑자사화 직후 종묘사직에 친제하고 환궁할 때 연주할 악장, 내관 김처선을 처단한 뜻을 밝히는 악장, 대사례를 마치고 환궁할 때 연주할 악장을 모두 <납씨곡>의 형식에 따라 새로 지어 바치도록 명하였다. 위의 세 작품이 한결같이 연산군이 자신의 강력한 힘을 드러내었던 시기에 지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산군은 <납씨곡>의 형식적 요소뿐만 아니라 내용적 요소까지도 되살리려 하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Abstract

This article aims to examine the main characteristics of Napssigok written by Jeong Dojeon during the reign of King Taejo, and its influence on later court lyrics, Akjang. Naghachu, a powerful leader of the Northern Yuan dynasty in Manchuria, invaded the northern part of Goryeo dynasty in 1362. A 28-year-old general Yi Seonggye, who afterward established Joseon dynasty, was immediately appointed the commander of the defensive army of Goryeo, and he seized a chance of victory by smashing alone into the core point of Northern Yuan’s vicious troops. At last, Naghachu retreated from Yi’s resolute strategy and never raided Goryeo again. In 1393, Jeong Dojeon, the virtual prime minister of Joseon, celebrated Yi’s such distinguished services by composing Napssigok in which he not only described the progress of the battle in detail but also emphasized young Yi’s intrepid courage and remarkable martial arts. Napssigok was qualified as a repertory piece for the royal banquet music during the reign of King Taejong, but it was relatively underestimated probably because Napssigok depicted Yi not as the holy founder of the dynasty but as a mere general. Meanwhile, in the cases in which Yi’s military career was needed to be highlighted, Napssigok was often applied to the composition of new court lyrics such as Paljundobu and Yongbieocheonga. In particular, Napssigok accounted for a great part of Dukje, an official ritual for commissioned officers where the whole attendance recalled the founder’s grand military achievements. Besides, Napssigok exerted a direct influence on later court lyrics in terms of form. Napssigok was originally composed in Chinese classical verse form. However, when it was actually sung, the verses suffixed with Korean vernacular words and the melody of Cheongsanbyeolgok were applied. Imonggok in 1492 is the first example which was written in imitation of such a reciting form of Napssigok.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san, at least three more imitations were composed, all of which were potentially made use of parading King Yeonsan’s royal prerogative by identifying him with Yi as a unbeatable military comma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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