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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구호분유의 쇄도와 육아용 분유로의 전용(1945~1965)

The Rush of Relief Powdered Milk after Liberation and its Conversion to Infant Formula (1945–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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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일제강점기까지 한국인 대다수는 우유를 접한 적이 없다. 그런데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갑자기 무상 구호품으로 탈지분유가 쏟아져 들어왔다. 한국인은 “날 분유”를 먹이면 배탈이 나서 우유죽으로 먹으려 했다. 하지만 일선학교에서는 결식아동에게 우유죽으로 공급할 여건이 안되어 “날 분유”를 배분했다. 아동들은 구호분유를 기피했다. 학교는 애물단지가 된 구호분유를 방치하거나 암시장에 팔았다. 암시장으로 흘러들어간 구호분유는 소분분유, 환원우유, 제과원료로 유용되었다. 소분분유란 구호분유에 설탕, 비타민을 임의로 섞어 작게 나눈 것이다. 한편 일제강점기 상류층의 육아용 자양식이던 조제분유가 해방된 뒤에도 수입되었다. 고가의 외제조제분유는 분유가 근대적 육아용 자양식이고 분유를 먹이면 우량아가 되는 것처럼 선전했다. 소분분유는 이러한 광고효과에 기대어 육아용 분유로 전용되었다.

Abstract

Until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majority of Koreans had never encountered milk. However, after liberation and the end of the Korean War, skim milk powder began pouring into the country as a form of aid. Many Koreans tried to eat milk porridge because they experienced upset stomachs when they ate powdered milk. However, there was no way to supply milk porridge to undernourished children in schools, so they were given powdered milk, but children tended to avoid it. Schools also often let the powdered milk spoil or sold it on the black market. Relief milk powder that flowed into the black market was useful as subdivision of powdered milk. Subdivision of powdered milk was a mixture of sugar and vitamins in relief milk powder and divided into smaller ones. However, infant formula was imported even after the liberation, which used to be a child rearing diet for the upper class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Foreign-made infant formula was promoted as if it was a modern nourishing baby-food and feeding it would make it a better baby. By exploiting formula advertising. subdivision of powdered milk was used into infant formu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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