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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중세 결부제의 전개과정

The Development of the Gyeol-bu System(結負) in Korean Ancient and Middle 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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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농경이 국가경제의 토대였던 전근대 국가에서는 합리적인 조세정책을 운영하기 위해 농부와 함께 농지 파악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국가는 시대별 특성에 맞는 공정한 호구조사와 양전을 통해 농업을 장려하였다. 결부제라는 측량시스템은 토지의 크기, 수확량, 과세를 연결시키는 제도로서, 고조선부터 조선에 이르는 한국 전근대 토지제도의 기본 도구로 사용해 왔다. 고조선에서는 수확량만 계산하는 고대적 결부양전법을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중국의 동진과 천하체제 구축 압력으로 고조선이 쇠망하자, 고조선의 후예인 열국과 삼국은 여러 형태로 스스로의 경제체질을 바꾸려 하였다. 고대에서 중세사회로의 전환 모색 및 실현이었다. 그 와중에 결부양전제는 수확량과 함께 면적도 동시에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파와 파적의 제시였다. 그렇게 새로워진 중세적 결부양전제를 토대로 고구려는 공정한 조세제도를 만들었고, 좌식자와 하호라는 중세 전주전객제도 구축하였다. 고구려의 뒤를 이어 신라와 발해도 중세 전주전객제를 운영하였다. 중앙정부는 파와 파적의 제시에 그쳤지만, 전국 각 지역의 농업현장에서는 결과 결적, 부와 부적, 속과 속적, 파와 파적의 적용에 자의성이 높아졌다. 폭렴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전주와 전객 가운데 전주들을 위한 제1차 중세적 결부양전법의 보완이 필요해진 것이다. 결국 9세기 이후 신라와 고려 정부는 수확량 중심의 결부속파와 면적중심의 결적, 부적, 속적, 파적과의 상관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1결=방33보(1089보2)라는 보적을 제시하였다. 그 결과 결부수에 1089를 곱하면 결적을 알 수 있게 하고, 결적에 1089를 나누면 결부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여말선초 제2차 중세적 결부양전법의 보완은 전주전객 가운데 전객을 위한 정책이었다. 이전과 달리 농업현장을 지키고 있던 전객농민 특히 자경소농들의 입장에서는 정부가 측량한 후 알려준 농지 면적과 수확량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했고, 정부도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조선의 세종정부는 이를 위해 농지가 기름지고 척박한 정도를 반영하여 면적은 차이가 있지만 결부수가 같으면 조세수취량은 동일하다는 것을 공유하기 위해 부적 중심의 결부양전제를 시행하였다. 그리고 이는 곧 중세적 결부양전제가 해체되기 시작했음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Abstract

In pre-modern economies that were founded on agriculture, it was important to identify which farmland belonged to which farmers in order to implement tax policies. Many nations encouraged agriculture through fair censuses and land measurements according to local characteristics. The Korean gyeol-bu(結負) system of land measurement was determined taxes based on the land area and production capacity, serving as a the core pre-modern land taxation instrument in Korea. In Gojoseon, an ancient gyeol-bu (結負) system was used to calculate only land yield. In the Middle Ages, from the Three Kingdoms Period to the beginning the Joseon Dynasty, the system was modified to measure both land yield and area. During this time, the pa (把) unit of land area was created and defined to promote international trade. When land size was the standard by which taxes were collected, people neglected yield. Then the bo(步積) standard was developed which accounted for both land yield and area. After that, the jeon-ju (田主) standard was developed for tax collectors. However, this standard was somewhat subjective, creating problems for the jeon-gaeg(佃客), taxpayers. In response, the bu (負積) standard was developed which jeon-gaeg(佃客) found more reliable, even when being used to evaluate small parcels of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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