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발원한 국채보상운동의 사회문화적 전개양상과 함의
The Social and Cultural Meanings of National Debt Redemption Movement started in Dae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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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연구의 목적은 구한말 자본가들의 요구, 여성의 목소리 내기, 민중의 능동적 주체화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국채보상운동을 조망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시도하는 것이다. 첫 번째, 국채보상운동은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상인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고안된 운동이었다. 두 번째, 국채보상운동은 여성들이 전근대적인 가부장제에서 벗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된 운동이었다. 세 번째, 국채보상운동은 통치의 대상으로서 수동적 객체 상태에 머물던 일반 민중이 능동적인 사회적 주체로서의 모습을 확인한 운동이었다. 국채보상운동은 짧은 기간 지속되었고 국권회복이란 관점에서 보면 실패로 끝난 운동이지만 20세기 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던 사회문화적 변화를 극명하게 드러내면서 봉건적 신분제와 가부장적 억압에서 벗어난 평등한 사회에 대한 민중의 열망이 드러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국채보상운동은 일본의 강압적 지배 속에서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상황 속에서 한국의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국가와 국민을 어떤 방식으로 규정하고 호명하려 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는 사건이면서 동시에 국민으로 호명된 하위주체들이 호명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동등한 주체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한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provide a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the National Debt Redemption Movement initiated in Daegu by examining the three aspects: the Korean merchant class's economic interests, women's claims for their rights and the active subjectivation of people. First, the National Debt Redemption Movement was a movement based on the economic interests of the merchant class in Daegu and Gyeongbuk region. Second, it was a movement which served as an occasion for women to speak out in the pre-modern patriarchal system. Third, it was a movement in which the people were constituted as an active social subject. Although the National Debt Redemption Movement lasted for a short period of time and ended in failure in terms of the recovery of the national sovereignty, it clearly revealed social and cultural changes that Korean society had undergone in the early 20th century, revealing the people's desire for an equal society away from feudal status system and patriarchal oppression. Considering that the capitalism began to take root in full force in Japanese rule over Korea, the movement can be understood as a case to see how the Korean capitalist merchant class tried to use the state and the people for their survival. The movement also shows that the subordinate subjects actively responded to the national call and tried to establish them as equal subj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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