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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과 북한군의 대응

The Inchoen Landing Operation and Response of North Korean People's Ar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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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한국전쟁 중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은 전쟁의 흐름을 바꾼 일대 사건으로 많은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맥아더가 적을 기만하고 작전계획에 대한 기도비닉을 달성함으로써 완벽한 기습을 달성했다는 점이 이 작전의 주된 성공 요인으로서 지적되었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북한이 사전에 이를 사전에 예측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북한 자료를 검토하기까지는 이를 확인할 수 없었다. 박명림은 처음으로 인천지역에 주둔했던 북한군의 작전문서를 UN측 노획문서군에서 찾아내 검토함으로써 북한군은 인천이 상륙지점이 될 것이라는 점을 미리 알고 이에 대비하는 조치들을 취했기 때문에 “인천상륙은 결코 기습이 아니었다”고 단언하며,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천에 상륙한 UN군이 서울을 점령하기까지 13일이나 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논문은 인천상륙을 전후한 시기의 북한측 사료와 구 소련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과연 북한은 인천상륙작전 이전에 이 작전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인천에 UN군이 상륙한 이후 북한은 어떠한 방식으로 새로운 사태에 대해 대응하고자 했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인천상륙을 전후한 북한의 대응을 면밀히 재구성한 결과, 우리는 다음과 같은결론을 얻었다. 첫째, 북한은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기 전부터 그들의 점령지 배후로 UN군이 상륙해 올 가능성에 대비해 해안 방어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으며, 그 중에서 인천은 주요 상륙 예상지점으로 고려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인천이 반드시 상륙지점일 것이라는 정보를 갖지 못했고 인천을 비롯한 전 해안지역에 대한 방어대책을 취하고자 했다. 그러나 김일성은 낙동강 전선에서 ‘최후공세’라고 부른 9월 공세를 시행하면서 후방 방어보다는 모든 전력을 낙동강전선에 투입했다. 9월 공세가 실패로 돌아간 후에도 김일성은 후방의 반상륙대책강화보다는 또 한 번의 공세를 준비하는데 좀 더 신경을 썼다. 상륙 며칠 전 목포, 군산 지역에 UN군의 양동이 시행되었을 때 앞으로 상륙작전이 있을 것인지,만약 상륙이 이루어진다면 그곳이 어디가 될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예측을 할 수없었다. 둘째, 인천상륙이 이루어진 이후 김일성과 북한군 지도부는 인천상륙의 심각성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낙동강선에서 또 한 번의 공세를 취하기 위한 욕심 때문에낙동강선에서 일부 전투 사단들을 서울로 북상하게 해 서울 서측방 방어를 강화하는 대신, 최용건의 서해안 사령부가 경인지역 주변의 예비 연대 및 여단만으로서울방어에 임하게 했다. 스탈린은 9월 18일 김일성에서 낙동강선에서 ‘4개 사단’을 북상하게 해 서울서측 방어를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전선사령관 김책과그의 참모장 김웅의 반대에 직면에 극히 적은 병력만을 서울로 전용했다. 김일성은 또한 낙동강 방어선에서의 주력의 철수를 즉각 시행하지 않고 귀중한 시간을허비함으로써 그가 뒤늦게 철수명령을 내릴 무렵에는 이미 미 제8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함으로써 부대들이 조직적 철수를 시행할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김일성과 북한군 지도부는 전략적 작전지도의 미숙성으로 인해 북한군 주력이 UN군의 인천상륙으로 인해 포위망에 빠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중국과 소련의 일부 지도자들은 북한군이 8, 9월 공세에서 실패하자 주력의 철수를통해 후방의 강화를 조언했으나 김일성과 북한군 수뇌부는 ‘최후공세에 의한 전한반도 점령’의 희망적 사고를 버리지 않았다. 인천상륙작전이 시행된 이후에도그들은 후방에 대한 위협에 신속히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북한군 주력이 붕괴되는결과를 가져왔다.

Abstract

The Inchon Landing Operation commanded by General MacArthur in the Korean War has drawn attentions from many scholars as a milestone that had changed the course of war. It has been pointed out that its success was attributed to MacArthur's achievement of the impeccable surprise attack by deceiving the enemy and concealing the operational plan. Whether North Korea had foreseen the Incheon Landing Operation has yet been confirmed until concerned documents of North Korea were examined. Myeng Rim Park was the first to discover among archives seized by the United Nations (UN) operational documents of North Korean Forces stationed in Incheon area and to investigate them. Based on new information obtained from his research, he asserts "the Incheon Landing Operation was never a surprise attack", for North Korean Forces had known in advance that Incheon would be the landing location and taken measures to prepare for the possible attack. Precisely for these reasons, he explains, it took 13 days for the UN Forces to capture Seoul even after they had landed at Incheon. This paper intends to study how accurate the North Korean prediction had been on the Incheon Landing Operation before its execution and in what ways North Korea planned to respond to this new development after the UN landing by comprehensively investigating North Korean and Soviet records around the time of the Incheon Landing Operation. Close reconstruction of North Korean response around the Incheon Landing results in the following conclusions: First, before the Incheon Landing Operation North Korea had taken measures to reinforce the coastal defense against the possibility of the UN Forces landing at the rear of the occupied In conclusion, with immaturity of strategic operational leadership, Il Sing Kim and North Korean military leaders could not prevent the main body of the North Korean Forces from being entrapped into the encircling net created by UN Forces landing at Incheon. Some Chinese and Soviet leaders had advised to withdraw the main body and to reinforce the rear after the North Korean failure of the August and September offensives, but Il Sung Kim and North Korean People's Army leaders refused to abandon the optimism of "Occupation of All Korean Peninsula by Ultimate Offensive." Even after the Incheon Landing Operation had been carried out, they did not make a prompt response to the threat at the rear, thus resulting in the destruction of the military main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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