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5년 高唐 전쟁과 唐兵의 구성: 衛士의 편성과 征人의 유형을 중심으로
The branch of the Tang army and navy during Goguryo-Tang War in 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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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년 고당(高唐) 전쟁에 종군한 당병(唐兵) 가운데 이 논문에서 절충부 위사와 정인의 편성과 유형을 분석하였다. 정규군인 절충부 위사는 645년 고당 전쟁 당시 당병의 주력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수도 장안(長安)과 태자 치(治)와 신하들이 머문 ‘임시 수도’ 정주(定州)를 지킬 위사를 배치해야 했으므로 많은 위사를 동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 전기 절충부는 전국 각지에 골고루 분포한 것이 아니라 수도 장안이 있는 관내도(關內道)와 하동도(河東道), 동도(東都) 낙양(洛陽) 주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었다. 따라서 고구려와 가까운 하남도(河南道)와 하북도(河北道)보다 주로 이 지역의 절충부 위사가 종군하였다. 645년 고당 전쟁 때 당나라는 정규군 절충부 위사 이외에 모병으로 충당하였다. 사료에 소모(召募), 병모(兵募), 모병(募兵) 등으로 표기되는 모병의 법률 용어는 정인이었다. 즉 전쟁 때만 임시로 징발하였는데, 겉으로는 자원이었지만 실제로는 강제 징발이었다. 645년 전쟁 당시 모병은 장량(張亮)의 수군, 이적(李勣)과 당 태종이 지휘한 육군, 이적이 지휘한 난주(蘭州)와 하주(河州)의 항호(降胡), 영주도독(營州都督) 장검(張儉)이 지휘한 거란(契丹)․해(奚)․말갈(靺鞨), 기타 유목민 등이었다. 수군은 주로 남당 4도에서 모병하였으며, 육군은 관내․농우․하남․하북 등 북방 지역의 한인(漢人)과 이민족인 유목민을 동원하였다.
Abstract
The Tang army was composed of zhechongfu weishi, guard warriors, recruited soldiers called zhengren in Chinese, Turks and other nomadic troops, a few guarding warriors of intrepid garrison, Zhang Liang's navy during Goguryo-Tang War in 645. I analyzed zhechongfu weishi and recruited soldiers among the Tang army in this thesis. The Zhechongfu weishi, i.e. regular army and guarding warrior of intrepid garrison, is believed to be the main force of regular army at the time of Goguryo-Tang War in 645. Zhechongfu were not distributed evenly throughout the country, but were concentrated around Guannei province, where the capital Changan was located, Hedong province, and Luoyang, i.e. the second capital city called East Capital City(dongdu in Chinese) in the early Tang Dynasty. Therefore, guarding warriors, regular army of Tang dynasty, from these region such as Guannei and Hedong province, Luoyang, mainly served there than from Henan and Hebei province, which are close to Goguryo. The recruited soldiers were composed of soldiers from Jiangnan, Huinan, Lingnan province and San Xia valley who skilled in navigation and naval warfare, the army commanded by Li Ji and the emperor Taizong, the surrendered non-Chinese of Lanzhou and Hezhou presumed to be the Qiangs, the Tibetan nomad people, cavalry of the Qitans, Xi, Mohe by Zhang Jian, area commander of Yingzhou, Turks and other nomadic troops during the Goguryo-Tang War in 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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