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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중기 강원지역 요업의 성격과 도자 소비현황- 가마터와 명문자기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Nature of the Ceramic Industry and the Consumption of Ceramics from the Early to the Middl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in the Gangwon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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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북한강 수계에 위치한 양구는 관요가 설치되기 이전에는 공납용 백자를 생산하였으나 관요가 설치된 후에는 관요에 백토를 공급하고 가마에서는 민수용 백자를 생산하였다. 이때 생산된 민수용 백자도 양구군 내에서 소비되기보다는 인근 지역인 춘천 등지에서 소비되었음을 소비유적에서 출토되는 백자의 양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인구 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적었던 방산은 백토를 굴취하는데 많은 인력이 동원되었기 때문에 백자 생산량이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이는 16세기 운영된 가마가 15세기 이전에 운영된 가마보다 적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그리고 최소한 1636년 이후부터는 관요에 백토를 공급하는 役을 원주에서 맡아 공급하였음을 문헌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백자 생산에는 크게 증가하지 않은 것을 가마터의 수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남한강 수계에 위치한 원주는 공납용 자기를 생산하지 않았으나,원주에서 필요로 하는 자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하였음을 소비유적과 가마터에서 출토되는 백자를 통해 알 수 있다. 특히 최소한 1636년 이후부터 관요에 백토를 공급하다가 1687년 경에 공급처가 양구로 바뀌는데, 이 시기부터 원주는 풍족해진 백토를 사용하여 다양한 품질의 민수용 백자를 많이 생산하였음을 소비유적에서 출토된 백자와 가마터의 분포양상에서 알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품질의 백자를 생산할 수 있었던 토대는 조선시대의 원주는 감영이 있던 곳으로 다양한 신분의 소비계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소비층은 강원도 이외의 곳에서 생산된 백자도 사용하였는데 행구동과 반곡동에서 출토된 용문 의자와 ‘左◯戌’銘 등이 음각된 관요산 백자, 그리고 원주 혁신도시부지의 토광묘에서 수습된 분청사기어문병에서 알 수 있다. 이처럼 양구와 원주가 양질의 백토와 땔나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마의 분포양상이나 자기 생산에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소비층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있다.

Abstract

Only white porcelain for tribute was originally produced in the Yanggu area in the early Joseon period. Then after the Royal Kilns of the Joseon Dynasty came to be established, this area acted to supply white clay to these Royal Kilns and its kilns produced white porcelain meant for civilian consumption. At first, the civilian white porcelain from the Yanggu kilns was more heavily consumed in neighboring regions, such as Chuncheon. This can be seen in the nature of white porcelain excavated from consumption sites in the Chuncheon area. As many workers were mobilized in the production of white clay in the Yanggu region (which did not have a large population to begin with), there was a concomitant decrease in the number of workers involved in ceramic production. This can be seen in the fact that fewer kilns were in operation in the 16th century compared to the 15th century. Written records confirm that from 1636, the Wonju area replaced Yanggu in supplying the Royal Kilns with white clay. However, it appears that this did not lead to a significant increase in the production of white porcelain in the Yanggu area, as is evidenced by the number of kiln sites. On the other hand, the kilns of the Wonju area did not produce white porcelain for tribute but instead manufactured civilian white porcelain according to the needs of the area’s population. Around 1687, the source of white clay for the Royal Kilns was changed back to Yanggu. As a result, white clay became relatively abundant in the Wonju area, leading to an increase in both the quality and quantity of civilian white porcelain produced in this area. As Wonju housed the government offices of the Gangwon region, its inhabitants were of diverse status. The varying consumer groups also used white porcelain produced outside of the Gangwon region. This is proven by excavated artifacts, such as the chair with a dragon moitf, the white porcelains engraved with ‘戌○’ inscription, and buncheong ware with fish decorations. Thus, it can be said that despite there being no difference in the quality of clay and firewood, a difference between Yanggu and Wonju in the pattern of kiln distribution in the production of white porcelain emerged due to differences in the nature of consumer grou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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