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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麗末鮮初) 양구지역 백자요지(白磁窯址) 성립에 관한 연구

Study on the formation of white porcelain producing district in the end of the Koryo Dynasty and the Early Years of the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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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양구지역은 고려 시대의 전통적 자기 생산지가 아니었으며 자기가 만들어진 시기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14세기 고려의 사회적 배경을 통한磁器所 해체와 확산과정을 살펴보면 그 시기를 추정하여 볼 수 있다. 忠定王 2년(1350)부터 왜구의 본격적 침입은 남해안에 위치한 전라도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이때를 전후해서 해안가는 물론 내륙까지 쳐들어와 약탈을 자행했으므로 해안 지방에서 가마를 운영하던 장인들이 내륙 깊숙이 들어가 그 지방의 원료를 사용해서 청자 및 자기를 만들었다. 양구 지역은 도자기 제작에 필요한 용수와 땔감, 그리고 胎土가 풍족했기 때문에 청자의 제작기술을 지니고 있었던 장인들은 어렵지 않게 정착하여 백자를 제작하였을것이다. 양구의 窯業은 이러한 과정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이성계 발원 불사리장엄구 일괄품을 통해 홍무24년 4월 즉, 1391년의 4월에 그릇이 제작되었음을 정확히 알 수 있다. 이 외에 발원자와 발원목적, 그리고 양구 방산의 사기장인 沈.이라는 제작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자기들은 방산면 장평리, 송현리, 금악리 등에서14~15세기경에 제작된 편들과 태토와 유약, 번조방식 등이 서로 공통되는데, 태토를 정제하는 기술이 아직은 미흡하여 분쇄 과정만으로 거친 원료를 사용하였고, 유약 또한 고려 시대 청자에 맞는 것으로 제조가 되어 다소 철분이 많이 들어 있는 유약을 사용하고 있음이 확인된다.世宗實錄』「地理志」에 기록된 양구 방산지역 20호의 50명이 거주한 기록을 통해, 1호에 평균 2.5명이 가족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亡姓으로 기록된 성씨 등을 토대로 자기수공업에 필요한 기본인력의 수와 자기점촌을 이루는 호수 등을 통하여 20호 기준 50명의 4곳, 30호 기준 75명의 3곳, 또는 40호 기준 100명의 2곳 정도의 자기점촌이 양구 지역에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3기의 요지에서 모두 4점의 관사명이 새겨진 백자 도편을 살펴보았다. 이처럼 백자요지가 성립되고, 이어서 바로 공납자기를 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납청자를 만들던 강진일대의 장인들이 양구지역에 정착하였을 연계성을 더해 준다고 생각된다. 이들은 청자의 제작기술을 이미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태토를 선택했어도 어느 정도의 기술력은 유지되었고, 중앙에도 공납할 수 있는 백자를 제작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Abstract

It is not known when porcelains were made in Yanggu exactly, and Yanggu was not a porcelain producing district of Koryo kingdom neither. However in 14th century, the dissolution and dissemination of porcelain producing station make it possible for us to estimate when the district was formed. Since 1350, Because of the invasion of Japanese pirate raiders, the southern coast of Chulla province had been badly damaged. An aftermath of this made craftsman move inside of the Peninsula, producing porcelain of that area. Craftsman from the southern coast might settle down in Yanggu very well, because it had plenty of materials, such as water, wood, and clay. The porcelain production in Yanggu began in this process. I could know not only that the porcelain was made in April, 1391 based on Yi Seong-gye praying package of sarira containers possessed i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but also that prayer, praying purpose, and the producer Simryong, the master craftsman of Bangsanmyun, was existed. The porcelain was common in overglaze, clay, and burning form with those produced in Bangsanmyun, Jangpyungli, Songhyunli, Keumakli around 14th or 15th century. I also could verify that they used rough materials only because they didn``t have enough refining technique and used overglaze plenty of iron fits for Koryo porcelain. I could understand that there lived 50 people of 20 families in Bangsanmyun, 2.5 person per one family. And I estimated that many producing points were existed in Yanggu, 4 points of 50 persons in 20 families, 3 points of 75 persons in 30 families, 2 points of 100 persons in 40 families, based on lost name, standard workforce for porcelain industry, and number of families making porcelain industry. Also, I could find the broken pieces stamped 4 residential names in 3 producing points. I think that the producing area was quickly made and porcelain could be supplied to the Government because craftsman from Kangjin settled down in Yanggu. Although the clay was different, they could supply porcelains to the Government because they already had techniques making celadon porcel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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